[여행의 향기] 붉은빛 금문교 지나면 만나리…'미친 영혼' 달래는 예술과 낭만도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고아라 작가의 좌충우돌 미국 여행기 (2) 자유와 낭만의 샌프란시스코
자유와 낭만의 도시 샌프란시스코는 봄바람 살랑이는 이 계절에 어울리는 여행지다. 태양 아래 빛나는 붉은 현수교는 한순간에 하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고층 빌딩 숲을 지나던 트램은 어느새 과거가 남아 있는 언덕을 달그락거리며 오른다. 활기 넘치는 항구 너머엔 악마의 섬 알카트라즈가 “이리 오라”는 듯 손짓한다. 그뿐인가.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와 함께 찾아온 도시의 번영, 새로운 고향을 찾아 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 풍요 속의 모순에 반기를 든 비트 세대와 자유와 평화를 외치며 거리로 나온 히피들의 고향. 세상의 모든 다양성이 살아 숨쉬는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보자.
실현 불가능했던 꿈이 도시의 상징으로 샌프란시스코를 상징하는 수많은 것 중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단연 금문교(Golden Gate Bridge)다. 샌프란시스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때도 붉고 긴 다리가 미 서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은 알았으니 말이다. 샌프란시스코와 마린카운티를 잇는 이 거대한 현수교는 건설 당시 막대한 반대에 부딪혔다. 샌프란시스코 해협의 험준한 지형과 강한 조류와 바람 탓에 당시 기술로는 ‘실현 불가능한 꿈’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고, 엄청난 건설비용과 자연을 해친다는 여러 단체의 주장 때문이었다. 그러나 토목 엔지니어 조지프 스트라우스의 치밀한 설계와 끈질긴 노력 덕분에 금문교는 1933년 착공돼 4년4개월 만인 1937년 완공됐다.
샌프란시스코 반도의 북쪽 끄트머리에 다다르자 금문교가 위용을 드러낸다. 수많은 사진 속에서 봤지만 실제로 마주한 금문교는 그보다 훨씬 근사했다. 무려 2만7572개의 철선을 꼬아 만든 직경 90㎝ 케이블에 총 길이 2800m의 거대한 다리가 매달려 있다. 해수면과 다리의 길이는 비행기가 지나갈 정도로 높고 두 개의 탑의 높이도 227m나 된다. 걸어서 한 시간이 족히 걸리는 기나긴 다리의 끝에는 예술가들의 마을인 소살리토가 기다리고 있다. 문득 금문교는 ‘왜 금빛이 아니라 붉은빛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사실 금문교라는 명칭은 골든 러시 시대 당시 샌프란시스코 해협을 칭하던 말, 골든 게이트에서 따왔다. 다리가 붉은색인 이유는 따로 있다. 안개가 자주 발생하는 변덕스러운 기후에도 눈에 잘 띄도록 인터내셔널 오렌지 색을 칠했기 때문이다. 활발한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와 오렌지나무가 천지인 캘리포니아와도 꼭 어울리는 색이다. 신나게 금문교를 건너는데 다리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진다. 겁이 덜컥 났지만 알고 보니 ‘흔들림’이 금문교 기술의 핵심이란다.
교량 중심부에서 8m가량의 길이를 흔들릴 수 있게 건설함으로써 강풍과 강진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금문교를 유지하기 위한 샌프란시스코시의 노력이다. 그들은 다리의 부식을 막기 위해 매년 색을 덧칠하며 보수한다. 금문교 전체를 칠하는 데 꼬박 1년이 걸린다고 하니 단 하루도 빠짐없이 관리하는 셈이다. 금문교는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천차만별이다. 다양한 전망 포인트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곳은 포트 포인트와 비스타 포인트다. 비스타 포인트는 마린카운티 쪽에, 포트포인트는 샌프란시스코 쪽에 있다. 석양 무렵 배터리 스펜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금문교와 샌프란시스코의 야경도 빼놓을 수 없다.
항구도시의 활기찬 내음이 가득 아침 일찍 샌프란시스코의 전차 뮤니에 올라탄다.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노란 전차 안은 출근길에 나선 샌프란시스코 사람과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전차는 움직이는 건지 마는 건지 의심이 갈 정도로 느리다. 덕분에 차창 밖으로 샌프란시스코의 아침을 여유롭게 감상한다. 머리 위로 길게 늘어진 줄을 잡아당기니 정차 사인에 빨갛게 불이 켜진다. 전차에서 뛰어내리자 비릿한 바다 내음이 코를 찌른다. 항구도시 샌프란시스코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피셔맨스 워프 지역이다. 1800년대 중후반, 이탈리아계 어부들이 샌프란시스코만을 통해 이주해 오면서 피셔맨스 워프의 역사가 시작됐다. 선착장을 따라 난 산책로는 여유를 즐기는 여행객과 길거리 공연으로 언제나 북적인다. 조금은 촌스러운 식당 간판과 부둣가에 정박한 낡은 어선들, 그물을 정리하는 어부들의 모습이 시골 어촌 마을에 온 듯 정겹기도 하다.
피셔맨스 워프는 샌프란시스코의 해산물을 맛보기에도 좋은 장소다. 맛이 특별하게 좋다기보다는 분위기와 전통 면에서 그렇다. 유난히 사람들로 북적이는 식당을 골라 사우도어 안에 든 크램 차우더 수프를 맛본다. 테이블 여기저기에 게와 랍스터 껍질이 한 가득씩 널려 있다. 배가 두둑해진 사람들이 엄지를 치켜든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피어 39. 만을 따라 길게 늘어선 부두 중 가장 인기가 좋은 곳이다. 식당과 상점가들이 몰려 있는 쇼핑 단지인데 주변에도 아쿠아리움, 과거 초콜릿 공장이던 기라델리 광장 등 볼거리가 많다. 피어 39의 최고 인기는 뭐니뭐니 해도 바다사자다. 부두 끄트머리로 가면 수십 마리의 바다사자가 갑판에 누워 1년 내내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대도시에서 바다사자를 본다는 것이 생경하다가도 옹기종기 귀엽게 모여 있는 모습을 바라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탈출 불가능의 감옥, 알카트라즈 샌프란시스코의 부둣가를 걷다 보면 바다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외딴섬 하나를 볼 수 있다. 섬 위에는 창백한 건물들이 세워져 있는데, 바로 ‘알카트라즈(Alcatraz) 감옥’이다. 이 섬의 본래 이름은 더록(The Rock)이다. 1850년대 미국 최초의 등대가 이 섬에 세워진 뒤 군사 요새, 포로수용소를 거쳐 1912~1963년 연방 감옥으로 사용되면서 알카트라즈섬, 악마의 섬 같은 별칭을 갖게 됐다. 샌프란시스코의 거센 조류와 낮은 수온 때문에 ‘탈출 불가능한 천연의 감옥’이라 불린 알카트라즈는 알 카포네, 머신건 캘리, 버드맨 등의 극악무도한 죄수들이 수감되며 더욱 명성을 얻었다.
알카트라즈로 가는 페리를 타기 위해 피어33 선착장으로 향한다. 페리의 뱃고동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지고 머지 않아 알카트라즈에 닻을 내린다. 페리를 같이 탄 사람들과 우르르 감옥으로 들어가는데 왠지 모를 긴장이 느껴진다. 알카트라즈를 탐험하는 최고의 방법은 오디오 가이드 안내에 따라 부지런히 걷고 움직이는 것이다. 한국어도 지원된다. 감옥의 역사부터, 건물 구조, 수감자들의 생활, 당시 일어난 여러 사건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수감자의 실제 육성과 함께 재연되어 마치 현장에 와 있는 듯 생생하다. 1962년 발생한 죄수 3인의 탈옥사건 당시 숟가락으로 벽면을 파내 만든 탈출구와 간수들을 따돌리기 위해 만든 더미 인형도 볼 수 있다. 독방에 들어가 알카트라즈를 직접 체험해볼 수도 있다.
감옥 구석 벽면의 조그마한 틈새에 눈을 가져다 대니 샌프란시스코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보인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다. 탈출은 그림의 떡이던 죄수들에게 샌프란시스코를 바라보는 것보다 더한 고문이 있었을까. 아무도 가길 원치 않던 극악무도의 감옥이 이제는 하루에 수천 명이 제 발로 찾아가는 관광명소가 됐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다.
미국 사회 반기 든 비트 세대의 메카
파리를 대표하는 서점이 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라면 뉴욕에 스트랜드 서점이 있고, 샌프란시스코에는 시티라이트 서점(Citylight Bookstore)이 있다. 1953년 시인 로렌스 펄링게티에 의해 문을 연 이 작은 서점 겸 출판사는 1950년대 중반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중심으로 시작된 비트 세대의(Beat Generation) 메카였다.
비트 세대란 겉만 번지르르한 위선으로 가득했던 미국 자본주의 사회에 반기를 든 문학이나 예술가 집단을 일컫는다. 대표적인 비트 문학가로는 앨런 긴즈버그, 잭 케루악 등이 있다. 1955년 식스 갤러리에서 앨런 긴즈버그가 ‘울부짖음(Howl)’을 낭독하고, 그 시를 출판한 퍼링게티가 음란물 배포 혐의로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미국의 수많은 지식인, 예술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그의 석방을 주장했고, 퍼링게티는 마침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판결로 비트 운동은 더욱 구체적으로 발전하게 됐고, 그 중심에 바로 시티라이트 서점이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지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서점은 지하부터 지상까지 총 3층으로 이뤄져 있다. 비트 문학은 물론 일반 서점에선 보기 힘든 다양한 주제의 책이 가득하다. 벽면 곳곳에 새겨진 강렬한 문구들도 인상적이다. 2층으로 올라가면 비트 정신이 깃든 ‘시인의 방’이 보존돼 있다. 책 하나를 사 들고 건너편에 있는 베수비오라는 이름의 술집으로 향한다. 그냥 술집이 아니다. 수많은 문학가와 보헤미안 예술가들이 술잔과 함께 세상과 자유를 논했던 비트 세대의 또 다른 산물이다. 창밖으로 시티라이트 서점을 찾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름처럼 도시의 빛으로 영원히 남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샌프란시스코…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비트 운동의 물결은 1960년대 미국 전역을 달군 히피 운동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낳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히피 운동의 꽃이 피어난 장소가 바로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 애시베리(Haight Ashbury)지역이다. 한낮에 찾은 헤이트 애시버리 거리는 비교적 한산하지만 히피 문화의 정취가 가득하다. 벽면을 메운 그라피티와 재밌는 조형물, 그리고 히피 특유의 자유로운 복장을 한 사람들이 골목을 지나다닌다. 1967년 여름, 수만 명의 히피가 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작은 베트남 전쟁 반대였지만 머리에 꽃을 단 젊은이들은 인종 차별, 성차별 등과 같은 온갖 부조리를 꼬집으며 시와 노래를 외쳤다. 그 유명한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이다.
이 뜨거운 평화의 행진은 미국 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떤 이들은 히피를 두고 허상만 좇는 쓸모없는 집단,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마약과 쾌락을 탐닉하며 방랑하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 가치와 동떨어진 방향으로 변모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960년대 벌어진 히피운동의 본질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진솔한 관심이었다. 주류에 휩쓸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아를 탐색하는 것, 인간의 자유와 낭만을 노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보여준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기 전 트윈픽스(Twin Peaks)에 오른다. 저 멀리 펼쳐진 푸른 바다, 동화에나 나올 법한 알록달록한 건물들, 구불구불한 언덕 사이를 누비는 케이블카까지 샌프란시스코의 삶이 한눈에 들어온다. 봄바람이 살랑이고 꽃이 피는 이 계절, 샌프란시스코로 다시 가고 싶다.
여행 팁
인천과 샌프란시스코를 잇는 직항이 있다. 약 11시간 걸린다. 샌프란시스코의 대중교통은 크게 케이블카, 뮤니 버스, 뮤니 메트로가 있다. 일정 기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패스가 있으니 여행 계획에 맞춰 사도록 하자. 금문교는 렌터카, 도보와 자전거, 시티 투어버스 등을 이용해 건널 수 있다. 렌터카로 이동 시에는 통행료에 주의해야 한다. 샌프란시스코로 들어올 때만 부과된다. 따로 요금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화, 온라인 등으로 내야 한다. 알카트라즈 감옥 투어는 인기가 좋아 여행 전 예약이 필수다. 티켓 가격은 성인 기준 37달러다. 주변 여행지로는 소살리토, 와이너리로 유명한 소노마, 나파밸리 등이 있다.
샌프란시스코=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실현 불가능했던 꿈이 도시의 상징으로 샌프란시스코를 상징하는 수많은 것 중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단연 금문교(Golden Gate Bridge)다. 샌프란시스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때도 붉고 긴 다리가 미 서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은 알았으니 말이다. 샌프란시스코와 마린카운티를 잇는 이 거대한 현수교는 건설 당시 막대한 반대에 부딪혔다. 샌프란시스코 해협의 험준한 지형과 강한 조류와 바람 탓에 당시 기술로는 ‘실현 불가능한 꿈’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고, 엄청난 건설비용과 자연을 해친다는 여러 단체의 주장 때문이었다. 그러나 토목 엔지니어 조지프 스트라우스의 치밀한 설계와 끈질긴 노력 덕분에 금문교는 1933년 착공돼 4년4개월 만인 1937년 완공됐다.
샌프란시스코 반도의 북쪽 끄트머리에 다다르자 금문교가 위용을 드러낸다. 수많은 사진 속에서 봤지만 실제로 마주한 금문교는 그보다 훨씬 근사했다. 무려 2만7572개의 철선을 꼬아 만든 직경 90㎝ 케이블에 총 길이 2800m의 거대한 다리가 매달려 있다. 해수면과 다리의 길이는 비행기가 지나갈 정도로 높고 두 개의 탑의 높이도 227m나 된다. 걸어서 한 시간이 족히 걸리는 기나긴 다리의 끝에는 예술가들의 마을인 소살리토가 기다리고 있다. 문득 금문교는 ‘왜 금빛이 아니라 붉은빛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사실 금문교라는 명칭은 골든 러시 시대 당시 샌프란시스코 해협을 칭하던 말, 골든 게이트에서 따왔다. 다리가 붉은색인 이유는 따로 있다. 안개가 자주 발생하는 변덕스러운 기후에도 눈에 잘 띄도록 인터내셔널 오렌지 색을 칠했기 때문이다. 활발한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와 오렌지나무가 천지인 캘리포니아와도 꼭 어울리는 색이다. 신나게 금문교를 건너는데 다리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진다. 겁이 덜컥 났지만 알고 보니 ‘흔들림’이 금문교 기술의 핵심이란다.
교량 중심부에서 8m가량의 길이를 흔들릴 수 있게 건설함으로써 강풍과 강진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금문교를 유지하기 위한 샌프란시스코시의 노력이다. 그들은 다리의 부식을 막기 위해 매년 색을 덧칠하며 보수한다. 금문교 전체를 칠하는 데 꼬박 1년이 걸린다고 하니 단 하루도 빠짐없이 관리하는 셈이다. 금문교는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천차만별이다. 다양한 전망 포인트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곳은 포트 포인트와 비스타 포인트다. 비스타 포인트는 마린카운티 쪽에, 포트포인트는 샌프란시스코 쪽에 있다. 석양 무렵 배터리 스펜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금문교와 샌프란시스코의 야경도 빼놓을 수 없다.
항구도시의 활기찬 내음이 가득 아침 일찍 샌프란시스코의 전차 뮤니에 올라탄다.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노란 전차 안은 출근길에 나선 샌프란시스코 사람과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전차는 움직이는 건지 마는 건지 의심이 갈 정도로 느리다. 덕분에 차창 밖으로 샌프란시스코의 아침을 여유롭게 감상한다. 머리 위로 길게 늘어진 줄을 잡아당기니 정차 사인에 빨갛게 불이 켜진다. 전차에서 뛰어내리자 비릿한 바다 내음이 코를 찌른다. 항구도시 샌프란시스코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피셔맨스 워프 지역이다. 1800년대 중후반, 이탈리아계 어부들이 샌프란시스코만을 통해 이주해 오면서 피셔맨스 워프의 역사가 시작됐다. 선착장을 따라 난 산책로는 여유를 즐기는 여행객과 길거리 공연으로 언제나 북적인다. 조금은 촌스러운 식당 간판과 부둣가에 정박한 낡은 어선들, 그물을 정리하는 어부들의 모습이 시골 어촌 마을에 온 듯 정겹기도 하다.
피셔맨스 워프는 샌프란시스코의 해산물을 맛보기에도 좋은 장소다. 맛이 특별하게 좋다기보다는 분위기와 전통 면에서 그렇다. 유난히 사람들로 북적이는 식당을 골라 사우도어 안에 든 크램 차우더 수프를 맛본다. 테이블 여기저기에 게와 랍스터 껍질이 한 가득씩 널려 있다. 배가 두둑해진 사람들이 엄지를 치켜든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피어 39. 만을 따라 길게 늘어선 부두 중 가장 인기가 좋은 곳이다. 식당과 상점가들이 몰려 있는 쇼핑 단지인데 주변에도 아쿠아리움, 과거 초콜릿 공장이던 기라델리 광장 등 볼거리가 많다. 피어 39의 최고 인기는 뭐니뭐니 해도 바다사자다. 부두 끄트머리로 가면 수십 마리의 바다사자가 갑판에 누워 1년 내내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대도시에서 바다사자를 본다는 것이 생경하다가도 옹기종기 귀엽게 모여 있는 모습을 바라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탈출 불가능의 감옥, 알카트라즈 샌프란시스코의 부둣가를 걷다 보면 바다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외딴섬 하나를 볼 수 있다. 섬 위에는 창백한 건물들이 세워져 있는데, 바로 ‘알카트라즈(Alcatraz) 감옥’이다. 이 섬의 본래 이름은 더록(The Rock)이다. 1850년대 미국 최초의 등대가 이 섬에 세워진 뒤 군사 요새, 포로수용소를 거쳐 1912~1963년 연방 감옥으로 사용되면서 알카트라즈섬, 악마의 섬 같은 별칭을 갖게 됐다. 샌프란시스코의 거센 조류와 낮은 수온 때문에 ‘탈출 불가능한 천연의 감옥’이라 불린 알카트라즈는 알 카포네, 머신건 캘리, 버드맨 등의 극악무도한 죄수들이 수감되며 더욱 명성을 얻었다.
알카트라즈로 가는 페리를 타기 위해 피어33 선착장으로 향한다. 페리의 뱃고동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지고 머지 않아 알카트라즈에 닻을 내린다. 페리를 같이 탄 사람들과 우르르 감옥으로 들어가는데 왠지 모를 긴장이 느껴진다. 알카트라즈를 탐험하는 최고의 방법은 오디오 가이드 안내에 따라 부지런히 걷고 움직이는 것이다. 한국어도 지원된다. 감옥의 역사부터, 건물 구조, 수감자들의 생활, 당시 일어난 여러 사건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수감자의 실제 육성과 함께 재연되어 마치 현장에 와 있는 듯 생생하다. 1962년 발생한 죄수 3인의 탈옥사건 당시 숟가락으로 벽면을 파내 만든 탈출구와 간수들을 따돌리기 위해 만든 더미 인형도 볼 수 있다. 독방에 들어가 알카트라즈를 직접 체험해볼 수도 있다.
감옥 구석 벽면의 조그마한 틈새에 눈을 가져다 대니 샌프란시스코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보인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다. 탈출은 그림의 떡이던 죄수들에게 샌프란시스코를 바라보는 것보다 더한 고문이 있었을까. 아무도 가길 원치 않던 극악무도의 감옥이 이제는 하루에 수천 명이 제 발로 찾아가는 관광명소가 됐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다.
미국 사회 반기 든 비트 세대의 메카
파리를 대표하는 서점이 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라면 뉴욕에 스트랜드 서점이 있고, 샌프란시스코에는 시티라이트 서점(Citylight Bookstore)이 있다. 1953년 시인 로렌스 펄링게티에 의해 문을 연 이 작은 서점 겸 출판사는 1950년대 중반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중심으로 시작된 비트 세대의(Beat Generation) 메카였다.
비트 세대란 겉만 번지르르한 위선으로 가득했던 미국 자본주의 사회에 반기를 든 문학이나 예술가 집단을 일컫는다. 대표적인 비트 문학가로는 앨런 긴즈버그, 잭 케루악 등이 있다. 1955년 식스 갤러리에서 앨런 긴즈버그가 ‘울부짖음(Howl)’을 낭독하고, 그 시를 출판한 퍼링게티가 음란물 배포 혐의로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미국의 수많은 지식인, 예술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그의 석방을 주장했고, 퍼링게티는 마침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판결로 비트 운동은 더욱 구체적으로 발전하게 됐고, 그 중심에 바로 시티라이트 서점이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지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서점은 지하부터 지상까지 총 3층으로 이뤄져 있다. 비트 문학은 물론 일반 서점에선 보기 힘든 다양한 주제의 책이 가득하다. 벽면 곳곳에 새겨진 강렬한 문구들도 인상적이다. 2층으로 올라가면 비트 정신이 깃든 ‘시인의 방’이 보존돼 있다. 책 하나를 사 들고 건너편에 있는 베수비오라는 이름의 술집으로 향한다. 그냥 술집이 아니다. 수많은 문학가와 보헤미안 예술가들이 술잔과 함께 세상과 자유를 논했던 비트 세대의 또 다른 산물이다. 창밖으로 시티라이트 서점을 찾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름처럼 도시의 빛으로 영원히 남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샌프란시스코…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비트 운동의 물결은 1960년대 미국 전역을 달군 히피 운동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낳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히피 운동의 꽃이 피어난 장소가 바로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 애시베리(Haight Ashbury)지역이다. 한낮에 찾은 헤이트 애시버리 거리는 비교적 한산하지만 히피 문화의 정취가 가득하다. 벽면을 메운 그라피티와 재밌는 조형물, 그리고 히피 특유의 자유로운 복장을 한 사람들이 골목을 지나다닌다. 1967년 여름, 수만 명의 히피가 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작은 베트남 전쟁 반대였지만 머리에 꽃을 단 젊은이들은 인종 차별, 성차별 등과 같은 온갖 부조리를 꼬집으며 시와 노래를 외쳤다. 그 유명한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이다.
이 뜨거운 평화의 행진은 미국 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떤 이들은 히피를 두고 허상만 좇는 쓸모없는 집단,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마약과 쾌락을 탐닉하며 방랑하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 가치와 동떨어진 방향으로 변모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960년대 벌어진 히피운동의 본질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진솔한 관심이었다. 주류에 휩쓸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아를 탐색하는 것, 인간의 자유와 낭만을 노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보여준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기 전 트윈픽스(Twin Peaks)에 오른다. 저 멀리 펼쳐진 푸른 바다, 동화에나 나올 법한 알록달록한 건물들, 구불구불한 언덕 사이를 누비는 케이블카까지 샌프란시스코의 삶이 한눈에 들어온다. 봄바람이 살랑이고 꽃이 피는 이 계절, 샌프란시스코로 다시 가고 싶다.
여행 팁
인천과 샌프란시스코를 잇는 직항이 있다. 약 11시간 걸린다. 샌프란시스코의 대중교통은 크게 케이블카, 뮤니 버스, 뮤니 메트로가 있다. 일정 기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패스가 있으니 여행 계획에 맞춰 사도록 하자. 금문교는 렌터카, 도보와 자전거, 시티 투어버스 등을 이용해 건널 수 있다. 렌터카로 이동 시에는 통행료에 주의해야 한다. 샌프란시스코로 들어올 때만 부과된다. 따로 요금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화, 온라인 등으로 내야 한다. 알카트라즈 감옥 투어는 인기가 좋아 여행 전 예약이 필수다. 티켓 가격은 성인 기준 37달러다. 주변 여행지로는 소살리토, 와이너리로 유명한 소노마, 나파밸리 등이 있다.
샌프란시스코=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