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보호 못 받는 불편한 존재일 뿐
한철우 < 영국 더럼대 교수·경영학 >
얼마 전 한국에서 군 수사당국이 군대 내 동성애자를 색출해 기소한다는 기사를 봤을 때의 감정은 분노라기보다 여전히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허탈함이었다. 소수 인권과 관련해 빠질 수 없는 것이 성소수자, 즉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의 인권이다. 대선에서도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가 큰 이슈가 됐다. 영국은 유럽에서도 성소수자의 인권이 앞서 있는 만큼 영국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앞으로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영국의 성소수자 관련 통계를 보면 전체 인구의 약 1.7%가 본인을 동성애 혹은 양성애자로 구분한다. 남성이 2.0%, 여성이 1.5%로 남성의 동성애 혹은 양성애 비율이 높다. 나이별로 보면 젊은 세대일수록 동성애 및 양성애 비율이 높다. 65세 이상은 그 비율이 0.5%를 약간 웃돌지만 16~24세 그룹의 비율은 3.5%에 가깝다. 이렇듯 성소수자 규모가 적지 않다 보니 그들을 바라보는 대부분 사람의 인식은 매우 자유로운 편이며 본인들도 대개 성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법률적 보호가 이뤄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동성애자 인권 및 차별 문제가 쟁점이 된 것은 1960년대 후반 이후며, 21세기 들어서 비로소 그들의 인권 강화를 위한 다양한 제도가 마련됐다. 2000년 성소수자의 군 복무 금지가 폐지됐으며, 2010년 성 정체성에 기초한 군대 내 차별이 금지됐다. 2005년 성전환자는 그들의 법적 성별을 바꾸는 게 가능해졌으며, 2014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웨일스, 스코틀랜드에서 동성 간 결혼이 합법화됐다(북아일랜드에서는 파트너십 관계만 인정).
대다수 영국인은 동성 간 결혼을 인정하고 76%는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용인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5년 선거에서는 27명의 성소수자가 의회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렇듯 영국에서 성소수자는 더 이상 차별 대상이 아니며 국가적으로 그런 차별을 없애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성소수자에 관한 제대로 된 통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다른 통계치를 종합해 대략 0.3%의 남성이 동성애자일 것으로 추측되는 정도다. 그들의 성적 정체성이 국가 혹은 군대에 어떤 해악을 미치는지, 그것이 그들의 자유를 억압할 정도로 큰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기간 “동성애 때문에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확고하다”면서도 “군대 내 동성애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굳이 법률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성소수자는 이미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불편한 시선으로 충분히 고통받고 있다. 그런 고통을 국가가 보듬어주고 보호해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억압하는 것은 또 하나의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것이다.
한철우 < 영국 더럼대 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