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월성 서북쪽 해자에서 출토된 토우들. 오른쪽 두 번째가 터번을 두른 토우다.  ♣♣문화재청 제공
경주 월성 서북쪽 해자에서 출토된 토우들. 오른쪽 두 번째가 터번을 두른 토우다. ♣♣문화재청 제공
경주 월성(사적 제16호) 성벽에서 1500년쯤 전 제물로 묻은 것으로 보이는 인골(人骨) 2구가 출토됐다. 성벽 유적에서 인골이 나온 것은 국내 최초다. 신라와 페르시아의 활발했던 교류상을 보여주는 터번을 쓴 토우(土偶, 흙인형), 제작 연대·관직·이두 등이 적힌 목간(木簡), 곰을 비롯한 동물 뼈와 식물 씨앗, 나무로 만든 생활용품 등도 함께 나왔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16일 경주 월성 발굴현장에서 설명회를 열고 “5세기 전후에 축조한 것으로 보이는 월성 서쪽의 성벽 기초층에서 인골 2구가 출토됐다”며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사용한 흔적이 확인된 첫 사례”라고 밝혔다. 인골 중 1구는 하늘을 향해 바로 누워 있고, 다른 1구는 옆의 인골을 바라보도록 얼굴과 한쪽 팔이 약간 돌려져 있는 상태다.

연구소에 따르면 집이나 성벽, 제방, 다리 등을 만들 때 사람을 제물로 넣는 습속은 기원전 1600~1000년경 중국 상나라에서 성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제방이나 건물 주춧돌 아래 사람을 매장하면 무너지지 않는다는 인주(人柱)설화로만 전해왔으나 이번 인골 출토로 이 같은 설화가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월성의 서북쪽 해자에서는 높이 5~10㎝의 토우 10여점과 월성 축조연대를 밝혀주는 목간 7점도 나왔다. 6세기경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토우 중에서는 특히 터번을 쓴 토우가 주목된다. 어른 새끼손가락 크기의 ‘터번 토우’는 눈이 깊고 끝자락이 오른쪽 팔뚝까지 내려오는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있다. 연구소는 “터번 토우의 복식은 당나라 때 호복(胡服)이라고 불린 소그드인의 카프탄(셔츠 모양의 긴 옷)과 비슷해 페르시아 복식의 영향을 받은 소그드인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소그드인은 중앙아시아와 소그디아나 등에 살던 이란계 원주민이다.

해자에서 나온 목간 중에서 ‘병오년(丙午年)’이라는 글자가 확인돼 월성의 사용 시기를 더욱 구체적으로 확정할 수 있게 됐다. 병오년은 법흥왕 13년(526년)이나 진평왕 8년(586년)일 가능성이 높다. 경주 이외의 지역 주민에게 준 ‘일벌(一伐)’ ‘간지(干支)’ 등의 관직 이름과 이두가 적힌 목간도 확인됐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