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공약 이행, 그렇게 서둘 일 아니다
업무 지시가 쏟아진다. 대통령의 업무 지시야 극히 일상이지만 1호, 2호 식으로 번호를 매겨 가며 공표한다는 건 대통령 스스로 큰 의미를 두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공약을 정책에 적극 반영해 나가겠다는 의지 표현이거나 해당 이슈에 큰 비중을 두겠다는 다짐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너무 서두른다 싶다. 아무리 인수 절차를 밟지 못한 정권이라지만 그래도 임기는 5년이다. 차근차근 준비해 실행에 옮겨도 늦지 않는다는 얘기다. 미세먼지와 일자리 대책이 그렇다.

미세먼지야말로 초미의 관심사다.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단 한 차례도 미세먼지의 원인을 규명한 적이 없다. 중국이 가장 큰 원인이라지만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 그런데 불쑥 나온 것이 석탄발전소 가동 중지다.

기억할지 모르겠다. 4월 중순이다. 제주의 미세먼지가 전국 최악을 기록했다. 석탄발전소라곤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제주다. 청정지역에 툭하면 미세먼지주의보다. 왜 석탄발전소가 주범이 됐는지 모를 일이다. 청와대조차 석탄발전을 멈춰 줄일 수 있는 미세먼지량은 1~2%에 불과하다고 말하지 않던가.

원인은 모르는데 첫 솔루션이 원가가 낮은 발전소 정지다. 그러고는 원가가 1.6배나 먹히는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를 가동한다고 한다. 당연히 전기료가 오른다. 일반 전기요금을 올렸다가는 국민의 반발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만만한 산업용 전기요금이 타깃이다. 기업들이 그걸 다 떠안겠는가. 제품 가격에 전가할 것이다. 피해는 결국 국민이 본다.

더 큰 문제는 에너지 정책이다. 우리의 전력 사정은 5~7년을 주기로 과잉과 부족을 늘 되풀이해 왔다. 1986년 61.2%였던 전력예비율은 1994년 2.8%까지 떨어졌고, 2003년에는 17.1%까지 회복됐지만 2011년에는 급격히 낮아지면서 대정전 사태까지 빚었다. 전력이 남아돈다 싶으면 공급능력을 억제하고 예비율이 바닥까지 떨어지면 건설 기간이 짧은 LNG발전소로 땜질을 해온 결과다. 예비율이 높다고 무턱대고 노후 발전소를 폐쇄하고 신설 중인 발전소마저 포기한다면 또 다른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침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진입기다. 피해는 역시 국민에게 돌아온다.

무엇보다 미세먼지의 원인부터 정확히 조사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고 나서 석탄발전소의 가동 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 노후 발전소 폐쇄 결정이 나더라도 환경기술이 뛰어난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은 계속돼야 한다. 원가가 낮은 기저발전은 중요하다.

일자리 대책도 마찬가지다. 사실 비정규직 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 실패에서 비롯됐다. 기간제와 단시간 근로자를 보호하자고 만든 법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으니 말이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는 과욕에 노동계의 우려에조차 귀를 기울이지 않은 탓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실책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자리 대책을 이토록 서두르는지 모를 일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처럼 1만명의 비정규직을 당장 정규직화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무슨 걱정이겠는가. 재정 악화는 어떻게 할 것인지, 기업의 부담은 얼마나 늘어나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10%에 불과하다는 노조 조직률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노조의 10%에 불과한 ‘귀족노조’다. 이 문제를 풀지 않고선 대·중소기업, 정규·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해결할 수 없다. 귀족노조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재벌이 미치는 영향의 ‘새 발의 피’라는 투의 접근은 곤란하다.

임금체계 개편도 급선무다. 호봉제를 개선하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지 않고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커녕 경제에 주름살만 갈 뿐이다.

규제 개혁 없이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일자리 창출의 보고라는 서비스산업발전법안을 거부하는 태도로는 고용 증대를 기대할 수 없다.

약(藥)이 독(毒)이 될 수도 있다. 부작용부터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5년이면 충분한 시간이다. 공약 이행에 앞서 철저히 준비부터 하라. 그게 정공법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