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족 삶 속으로 관객들 몰입…탄탄한 연출·배우 열연 '기립박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연극 리뷰 '킬 미 나우'
소년이 성장한다. 외모에 관심이 많아지고 성욕은 시시때때로 솟는다. 멋지게 차려입고 담배를 피우고 싶고, 아버지가 자신을 아이 취급하는 것도 싫다. 대부분 사람이 거쳐가는 성장 과정이다. 하지만 어느 부자(父子)에게는 이 모든 순간이 힘겨운 고비다.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킬 미 나우’는 지체장애인인 아들 ‘조이’와 그를 돌보는 아버지 ‘제이크’ 이야기다. 캐나다 극작가 브래드 프레이저의 원작을 지이선이 각색하고 오경택이 연출했다. 지난해 5월 초연 이후 1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킬 미 나우’는 장애인의 성(性)이라는 민감한 주제에 접근한다. ‘조이’는 몸은 나날이 어른이 돼가지만 선천적인 장애로 팔다리를 잘 가누지 못해 욕구를 스스로 풀 수가 없다. 조이가 성장할수록 아버지 ‘제이크’의 고민도 깊어진다.
간단치 않은 소재지만 각본과 연출은 적당히 넘어가는 법이 없다. 상황과 감정을 끝까지 몰아붙인다. ‘괴물’이라는 놀림을 받고 온 조이가 “날 안아줄 여자는 없겠지?”라고 묻자 제이크는 “조이는 괴물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조이를 사랑할 여자를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답하지 못한다. 제이크는 고민 끝에 아들의 ‘조력자’가 되기로 한다. “이건 아빠 손이 아니야, 우리 조이 손이야.”
극이 중반부로 갈수록 중심추가 제이크에게로 기운다. 자신의 꿈을 밀어둔 채 아들에게만 헌신하며 살던 제이크가 몸이 점차 굳어지는 신경마비에 걸리면서다. 극심한 고통 때문에 약 없이는 견딜 수 없고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제이크는 “나는 괜찮지 않아. 다 놓치고 있어”라고 절규한다.
극의 문제의식은 존엄사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뻗어간다. 연극 제목인 ‘킬 미 나우’는 조이가 하는 태블릿PC 게임 속 등장인물이 하는 말이다. “내가 좀비가 되기 전에 나를 죽여줘, 킬 미 나우.” 제이크는 “조이가 말하는 ‘킬 미 나우’가 내게는 ‘힐 미 나우’로 들린다”고 말한다. 이번엔 조이가 아빠의 ‘조력자’가 된다.
상황이 가혹하더라도 사람이 서로를 돌보려는 의지 속에 구원이 있다는 것을 전하는 연극이다. 관객을 주인공들의 삶 속으로 끌어들여오는 극본과 군더더기 없이 속도감 있는 연출이 극의 정서와 관객의 정서를 긴밀히 이어준다. 누군가에겐 가장 큰 삶의 변수인 장애나 질병을 함부로 연민하지 않는 사려 깊음을 보여준 극본과 연출이다.
연극, 영화 등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이석준과 이승준이 제이크 역을, 연극·뮤지컬 무대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있는 젊은 배우 윤나무와 신성민이 조이 역을 번갈아 맡는다. 장애와 질병의 고통을 재현하면서도 고통 속에서 삶을 완성해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려낸 이들의 연기가 돋보였다. 7월16일까지, 4만~5만원.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킬 미 나우’는 장애인의 성(性)이라는 민감한 주제에 접근한다. ‘조이’는 몸은 나날이 어른이 돼가지만 선천적인 장애로 팔다리를 잘 가누지 못해 욕구를 스스로 풀 수가 없다. 조이가 성장할수록 아버지 ‘제이크’의 고민도 깊어진다.
간단치 않은 소재지만 각본과 연출은 적당히 넘어가는 법이 없다. 상황과 감정을 끝까지 몰아붙인다. ‘괴물’이라는 놀림을 받고 온 조이가 “날 안아줄 여자는 없겠지?”라고 묻자 제이크는 “조이는 괴물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조이를 사랑할 여자를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답하지 못한다. 제이크는 고민 끝에 아들의 ‘조력자’가 되기로 한다. “이건 아빠 손이 아니야, 우리 조이 손이야.”
극이 중반부로 갈수록 중심추가 제이크에게로 기운다. 자신의 꿈을 밀어둔 채 아들에게만 헌신하며 살던 제이크가 몸이 점차 굳어지는 신경마비에 걸리면서다. 극심한 고통 때문에 약 없이는 견딜 수 없고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제이크는 “나는 괜찮지 않아. 다 놓치고 있어”라고 절규한다.
극의 문제의식은 존엄사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뻗어간다. 연극 제목인 ‘킬 미 나우’는 조이가 하는 태블릿PC 게임 속 등장인물이 하는 말이다. “내가 좀비가 되기 전에 나를 죽여줘, 킬 미 나우.” 제이크는 “조이가 말하는 ‘킬 미 나우’가 내게는 ‘힐 미 나우’로 들린다”고 말한다. 이번엔 조이가 아빠의 ‘조력자’가 된다.
상황이 가혹하더라도 사람이 서로를 돌보려는 의지 속에 구원이 있다는 것을 전하는 연극이다. 관객을 주인공들의 삶 속으로 끌어들여오는 극본과 군더더기 없이 속도감 있는 연출이 극의 정서와 관객의 정서를 긴밀히 이어준다. 누군가에겐 가장 큰 삶의 변수인 장애나 질병을 함부로 연민하지 않는 사려 깊음을 보여준 극본과 연출이다.
연극, 영화 등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이석준과 이승준이 제이크 역을, 연극·뮤지컬 무대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있는 젊은 배우 윤나무와 신성민이 조이 역을 번갈아 맡는다. 장애와 질병의 고통을 재현하면서도 고통 속에서 삶을 완성해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려낸 이들의 연기가 돋보였다. 7월16일까지, 4만~5만원.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