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화 전설' 품은 페라스트의 인공섬…2000개 판화가 말을 거네~
주인 여러 번 바뀐 성곽도시 코토르
로마네스크·바로크…온갖 예술 양식이 숨쉰다
![성모 섬에서 바라본 페라스트 항구의 아담하고 고즈넉한 풍경.](https://img.hankyung.com/photo/201705/01.13945085.1.jpg)
아드리아 해까지 뻗은 검은 산, 몬테네그로
몬테네그로 내륙을 가로지르는 타라 산맥 꼭대기에는 곰솔나무가 빼곡하게 자란다. 4세기,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원정 온 로마인들은 타라 산맥에서 뻗어난 로브체 산 아래 진을 쳤다. 로마인들에게 로브첸 산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능선을 따라 솟은 곰솔나무를 사람으로 착각해서다. 착각에서 벗어난 뒤에도 영험해 보이는 산 기운은 경외의 대상이 됐다. 로마인들은 타라 산맥에서 아드리아 해까지 뻗어난 이곳을 검은 산, 몬테네그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몬테네그로를 두고 ‘육지와 바다의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유럽의 흑진주’라는 비유를 들며 작은 나라, 몬테네그로를 칭송한다. 북쪽에서 남쪽까지의 직선거리는 고작 150㎞, 전체 면적은 1만3000㎡로 제주보다 조금 크다. 현지인들은 북쪽에서 남쪽까지 달려서 이동하는 게 비행기 타는 것보다 빠르다고 농담한다. 나라는 작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유적 덕분에 유럽에서 인기 높은 휴양지가 됐다. 몬테네그로를 둘러싼 발칸 인근 국가에서 차로, 아드리아 해 건너에서 요트로, 세계 곳곳에서 비행기로(작지만 국제공항이 수도 포드고리차와 북쪽 티밧에 두 개나 있다) 입성한 사람들 대부분은 몬테네그로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진다. 누군가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험준하고 청정한 타라 계곡을 탐험하고 누군가는 아드리아 해에 면한 휴양지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낸다. 또 어떤 이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래된 도시들을 둘러보며 몬테네그로와 사랑에 빠진다.
어디에도 없을 아름다운 유적, 코토르
종종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와 비교되는 코토르는 타라 계곡, 피오르 끝자락에 위치한 성곽도시다. 가파르고 야트막한 해발 250m의 이반 산(이반은 성 요한을 가리킨다)이 병풍처럼 도시를 감싸 안았고, 앞으로는 쪽빛 아드리아 해가 빛나는 코토르 만이 펼쳐져 있다. 지리적 특성 탓에 먼 옛날부터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발칸의 내륙으로 입성하는 길목인 만큼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모두 치열했다. 5세기 고대 로마제국은 동고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이반 산 꼭대기까지 4.5㎞의 성곽을 건설했다. 이후 14세기 베네치아가 통치하면서 오스만튀르크와의 전쟁을 대비해 성곽 주변을 요새화했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 때문에 코토르는 ‘발칸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린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받은 한글 지도를 들고 여정을 시작했다. 이반 산의 쉬쿠르다 계곡이 있는 북문, 바다 쪽의 서문, 그리고 남문이 있는데, 대부분의 관광객은 인포메이션 센터와 가까운 서문을 통해 성곽 안으로 들어선다. 성곽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오루치아 광장에 우뚝 솟은 시계탑이다. 19세기 초 코토르를 점령한 나폴레옹이 자신의 치세를 기리기 위해 건축했다. 시계탑 주변으로 무기고, 작은 망루, 군인들과 지도자들의 집무실과 주거지, 감옥, 극장 등이 도열해 있다. 외관은 예전 그대로지만 내부에 있던 감옥은 커피숍, 오페라 극장은 카지노, 집무실은 박물관이 됐다.
광장 중심으로는 여러 골목들이 혈관처럼 뻗어 있다. 성곽도시의 골목은 적으로부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좁게 내는데, 이곳은 유난하다. 가장 좁은 골목의 이름은 ‘렛미패스(let me pass·지나갑시다)’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설 수 없을 정도다.
수없이 주인 바뀌며 다양한 양식 혼재
![이반 산과 해자에 둘러싸인 코토르 성곽 도시의 외관.](https://img.hankyung.com/photo/201705/AA.13943859.1.jpg)
![성모 섬 내부엔 은 판화와 천장의 성화들이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난다.](https://img.hankyung.com/photo/201705/AA.13933545.1.jpg)
![코토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성 트리푼 성당 앞.](https://img.hankyung.com/photo/201705/AA.13924041.1.jpg)
로마 가톨릭과 세르비아 정교회를 포함한 9개의 교회, 5개의 수도원, 귀족들의 궁, 병원, 극장, 도서관 등의 건물이 로마네스크·바로크 양식 등으로 건축됐다. 이 중 성곽도시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성 트리푼 성당과 세인트루크 성당이다. 성 트리푼 성당은 9세기 세워진 것으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성인인 성자 트리푼을 기리는 작은 신전이었다. 신전을 반석으로 1166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을 개축했다. 16세기 지진으로 무너졌지만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했고, 성 트리푼의 유해를 모셔와 안치했다. 세인트루크 성당은 서로 다른 두 종교가 한 예배당을 쓴다는 점에서 의미 깊다. 12세기부터 17세기까지는 로마 가톨릭 성당이던 곳이 이후 세르비아 정교회 성당이 됐다. 두 종교가 함께 미사를 볼 수 있게 된 건 19세기 초반의 일로 이는 화합의 상징이 됐다.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20분을 달려 페라스트로 이동했다. 코토르에 비해 작고 소담한 항구마을 페라스트는 근거리에 떠 있는 인공섬으로 유명하다. 섬에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지금 섬의 자리에는 암초가 있었고, 어부 형제가 이곳에서 성모화를 발견했단다. 사람들은 성모화를 모셔둘 교회를 짓기 위해 섬을 만들기 시작했다. 온 마을이 합심해 육지에서 돌을 나르고, 해적의 배를 부순 파편을 모아 바다 한가운데 차곡차곡 쌓았다. 바다를 메웠으니 교회를 지을 차례다. 제단을 만들어 암초에서 발견된 성모화를 모셔두고, 성당 벽과 천장에는 당대의 유명한 바로크 화가인 트리포쿠코야를 데려다가 성모의 생애를 표현한 68개의 유화를 그려 넣었다. 정성을 다해 성당을 완공하기까지는 무려 200년이 걸렸다.
성모와 천사를 새긴 자수에 감동
![페라스트에서 배를 타고 성모 섬으로 이동하는 여행자들.](https://img.hankyung.com/photo/201705/AA.13943858.1.jpg)
![바다에 떠있는 페라스트의 인공섬.](https://img.hankyung.com/photo/201705/AA.13924027.1.jpg)
![몬테네그로가 자랑하는 자수 작품.](https://img.hankyung.com/photo/201705/AA.13924092.1.jpg)
![동판화에 새겨진 코토르 지배자들.](https://img.hankyung.com/photo/201705/AA.13924712.1.jpg)
여행정보
몬테네그로로 가는 직항은 없다. 유럽 인근 주요 도시나 이스탄불을 경유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시차는 한국보다 여덟 시간 느리다. 화폐는 유로를 쓴다. 음식이 대체적으로 짜다. 몬테네그로 사람들은 귀한 손님일수록 음식을 짜게 내는 풍습이 있다. 음식 주문 전에 덜 짜게 해달라고 하는 게 좋다.
몬테네그로=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