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첫 경제팀 인선에서 옛 경제기획원(EPB) 출신들이 뜨고 있다. EPB 가운데서도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전성기를 구가한 ‘기획·예산 라인’이 부활하고 있다.

21일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지명된 김동연 아주대 총장과 앞서 임명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모두 EPB 출신이다. 이들은 기획과 예산업무를 주로 맡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EPB와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관료)는 한국의 경제관료를 양분하는 ‘영원한 맞수’다. 기획·예산·대외경제 등을 맡은 EPB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큰 그림에 익숙하다면, 모피아는 금융·세제·국고 등을 틀어쥐고 있어 경제 안정화와 단기적 위기 대응에 강하다는 평가다.

EPB는 ‘동북아 균형자론’ ‘비전 2030’ 등 미래 청사진을 내놓은 노무현 정부에서 특히 중용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6명의 청와대 정책실장 중 3명(박봉흠, 권오규, 변양균)을 EPB로 채웠다. 모피아는 한 명도 없었다. 반면 이명박 정부에선 모피아가 요직을 독식했다. 기획재정부 장관 3명(강만수, 윤증현, 박재완) 모두 모피아였다.

박근혜 정부에선 다시 EPB가 부상했다. EPB 중추였던 대외경제조정실(대조실) 출신의 조원동 경제수석과 현오석 부총리,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을 시작으로 최경환 부총리,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연이어 요직을 꿰찼다.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빛을 본 EPB는 지난 정부에서 중용된 대조실 출신이 아니라 기획·예산 라인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경제부총리 인선을 놓고 문재인 캠프에서 핵심 자문그룹을 맡았던 ‘박봉흠-변양균’ 라인이 ‘김진표-이용섭’ 등 모피아에 판정승을 거뒀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과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이 중책을 맡고 있는 만큼 금융위원장과 경제수석 등 남은 인선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