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연습실에서 무용수들이 ‘볼레로’ 군무를 연습하고 있다.
서울 서초동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연습실에서 무용수들이 ‘볼레로’ 군무를 연습하고 있다.
경쾌한 3박자 리듬의 ‘볼레로’에 맞춰 36명의 남녀 무용수가 도열했다. 이들은 고전발레처럼 엄격하게 정돈된 동작을 선보이다가 마술사가 망토를 털듯 장난스럽게 팔을 휘두르기도 했다. 무용수들의 중심에는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해 솔리스트로 활약한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44)가 섰다.

무용수들은 ‘디귿(ㄷ)’자와 ‘엠(M)’자 등으로 대오를 만들며 모이고 흩어졌다. 음악이 점점 고조되면서 독무(獨舞)하는 김용걸의 주위를 무용수들이 두 겹의 원으로 에워싸고 춤사위를 펼쳤다. 음악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군무(群舞)도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했다.

23일 서울 서초동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연습실. 다음달 2~4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를 현대무용 ‘쓰리 볼레로’ 중 김용걸의 ‘볼레로’의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었다.

안무가 김용걸
안무가 김용걸
국립현대무용단이 기획·제작하는 이번 공연에는 김용걸과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예술감독 김보람(34), Mnet 예능프로그램 ‘댄싱9 시즌2’에서 우승해 화제를 모은 김설진(36)이 모리스 라벨의 명곡 볼레로를 각각 재해석해 한 무대에 올린다.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세 명의 안무가가 서로 다른 음악적 규모와 편곡으로 각각의 개성과 장점을 살린 춤 무대에 무용애호가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군무에 담은 볼레로의 에너지

김용걸의 볼레로는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저와 36명의 무용수가 함께하는 군무가 수원시립교향악단 단원 85명의 라이브 연주에 맞춰 펼쳐진다”며 “120여 명이 뿜어낼 압도적인 에너지가 무대에서 객석으로 흘러넘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용걸은 클래식의 발레 동작에 한국무용적 요소와 코믹한 몸짓 등을 조합해 안무를 짰다. 볼레로는 작은북 하나의 반복적인 리듬으로 고요하게 시작해 점차 악기를 추가하면서 관현악 총주로 소리의 덩치를 키워나간다. 반복에 따라 악기 편성을 늘려가는 음악의 느낌처럼 김용걸의 볼레로는 여성 무용수가 혼자 추는 춤으로 시작해 점차 대오를 키운다. 그는 “군무 특유의 장엄함과 카타르시스를 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무용수가 한 몸인 듯 같은 동작을 하거나 무용수들이 여러 행렬로 서서 한 열씩 파도타기 식으로 몸을 틀며 도는 등 군무의 특성이 가득 녹아 있다. 남녀 무용수 모두는 몸의 라인을 따라 흐르는 검은 정장을 입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채 무대에 선다. 그는 “어두우면서도 역동적인 에너지가 있는 누아르 영화 같은 느낌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해체하고 다시 세우는 볼레로

첫 번째 무대는 김보람의 ‘철저하게 처절하게’다. 볼레로 원곡을 분해하고 재조립한 음악을 사용한다. 편곡을 맡은 박용빈은 볼레로를 본래의 대규모 편성이 아니라 소규모 앙상블로 재해석했다. 수원시향 연주자들이 라이브로 연주한다. 김보람은 “철저하고 처절하게 음악에 몸을 집중하고 내면의 움직임을 끌어낼 것”이라며 “음악 이전의 소리, 춤 이전의 몸을 통해 음악과 춤이 지닌 표현의 기원에 접근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세계적 현대무용단체인 벨기에 피핑톰 무용단에서 활동 중인 김설진의 안무작 ‘볼레로 만들기’가 두 번째 무대를 장식한다. 그는 “볼레로는 천천히 구조적으로 쌓아올렸다가 마지막에 무너뜨리는 음악”이라며 “이걸 처음부터 무너뜨려보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에서 안무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편곡·연주를 맡은 음악창작팀 ‘리브투더(LIVETOTHE;)’는 일상에서 수집한 사운드를 볼레로 리듬으로 확장한 음악을 준비했다. 그는 “볼레로를 해체하고 무너뜨리는 것이 진짜 볼레로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