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적폐청산' 시급한 부동산 시장
새 정부가 출범 이후 전광석화처럼 움직이고 있다. 검찰 개혁, 일자리 정책,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4대강 정책감사 등 국정 핵심 과제를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다. 집권 5년의 국정 성패가 취임 초기인 ‘프라임 타임(황금시간대)’에 달렸다는 판단 아래 ‘집권 100일 플랜’을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키워드는 ‘적폐 청산과 민생 안정, 통합·치유에 기반한 과감한 개혁’이다. 이들 중 특히 적폐 청산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민 여론이 새 정부 최우선 과제로 꼽을 정도로 공감대가 높아서다.

인허가 행정의 불투명 등 여전

기왕 적폐 청산이 화두로 부상한 마당에 건설부동산시장 적폐 청산도 이뤄지길 기대한다. 부동산산업은 국민 주거 등 실생활 밀착산업이다. 아울러 국토·도시의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 내는 국가적 인프라산업이기도 하다. 국민 주거문화와 도시 경쟁력도 상당 부분 부동산산업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 한국 부동산산업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데는 관행화된 적폐가 청산되지 못한 측면이 크다. 이 때문에 부동산산업에 대한 국민 인식도 긍정보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부동산시장 발전과 활성화를 가로막는 적폐는 개발 과정에서부터 거래·유통, 인허가 행정서비스, 정부 정책, 수요자 인식 등에 이르기까지 고르게 쌓여 있다. 새 정부에서의 국토교통부 장관은 주거복지, 도시재생 등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수행 이외에 ‘건설부동산산업 적폐 청산’에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국내 부동산·도시개발 메커니즘 전반에 걸쳐 있는 적폐를 살펴보고, 이를 ‘투명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그동안 역대 정부도 건설부동산시장의 적폐 개선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 왔고 상당한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적폐 청산 마인드로 접근한 경우는 흔치 않았다.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즉흥적으로 대처해 온 측면이 강하다. 이 때문에 국내 부동산시장에는 △개발 과정의 부정·불투명성 △중개·유통·거래의 불투명성 △인허가 행정의 불합리성 △정부의 과도한 주택시장 개입 △건축·도시·주택에 대한 문화의식 취약 △관련 업계의 수주 담합 관행 △국토·도시 정책 후진성 △공공 주거·건축물 관리 후진성 등 부동산산업계 적폐가 그대로 쌓여 있다.

지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부산 해운대 엘시티(LCT) 더 샵 복합단지’ 인허가 비리 사건은 건설부동산산업계의 구조적 적폐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 사건의 핵심은 초고층 대형 복합단지 개발에 대한 불투명한 인허가 시스템과 이를 악용한 개발업체와 정·관계 책임자들의 담합 구조였다.

선진화·활성화의 전제조건

국내 건설부동산산업 적폐 청산은 인허가 행정서비스의 불투명성 개혁부터 시작돼야 한다. 도시·부동산 행정의 과도한 비밀주의, 허가 기준의 불투명성, 책임자의 재량권 남용과 무책임, 행정 행위의 비일관성 등에 개선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선진국들은 개발 비리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함께 우수 개발업체와 설계업체 등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포지티브 정책도 병행하고 있다. 부동산 중개·유통시장의 투명성과 신뢰성 강화도 절실하다. 반세기 넘게 굳어져 온 적폐를 단기간에 청산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런 상태로는 국내 부동산시장의 선진화·활성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영신 한경부동산연구소장 겸 건설부동산 전문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