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어려도 어느덧 11년차 '중견 농부'
농업교육·낙농체험·캠핑…마을에 활력 '팍팍'
이런 가운데 레게머리를 한 30대 초반의 젊은 농부가 이장을 맡고 있는 곳이 있어 화제입니다. 경기 안성시 쌍지리입니다. 갓 서른한 살, 이른바 청년농부입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농부를 꿈꿨다는 윤태광 풀무골체험농장 대표의 얘기입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농업에 발을 디딘 지 11년째 되는 ‘중견 농부’입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업인 낙농업을 이어받았습니다.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건 아닙니다. 농업교육과 체험농장, 팜 캠핑 등을 통해 마을 분위기를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겁니다.
이달 초 찾은 안성 고삼면 풀무골에듀팜 한편에선 컨테이너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마을 어린이들이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을 짓고 있습니다. 윤 대표는 “마을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아 정부 보조금으로 체험농장 부지에 작은 도서관을 짓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31세에 어떻게 이장이 될 수 있었나요.
“특별한 건 없어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고 젊다 보니 마을 어르신들이 한번 해보라고 맡겨주셨습니다.”
▷이장이 된 뒤 주로 어떤 일을 했나요.
“올초에는 마을 대동제를 준비했어요. 봄철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엔 마을 주민이 농사짓는 데 필요한 비료, 농업용 비닐, 농자재 수량을 파악해 농협에 전달한 뒤 받아온 농자재를 마을 주민에게 나눠주는 일도 했고요. 얼마 전엔 마을 어르신들이 버스 정류장 표지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표지판을 세우고 버스에서 내리기 편하도록 바닥을 포장하는 일도 했습니다.”
윤 대표는 21세이던 2007년 농업과 축산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장래희망으로 농부를 적어냈습니다. 전문계 고등학교를 선택한 건 축사를 관리하는 데 필요한 용접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고교 졸업 후엔 농·축산업 특화 전문대학인 연암대학(LG연암학원이 운영)에서 축산을 전공했습니다.
윤 대표의 부친은 당시 소 수백 마리를 사육하는 ‘부농’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가업을 물려받는 걸 넘어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농장을 발전시켜나갔습니다. 벼, 옥수수, 호밀, 귀리 등 소의 사료가 되는 작물을 직접 재배해 사료 비용을 줄이고 사료를 개량해 우유 생산량을 늘려나갔습니다.
그런 윤 대표에게 시련은 찾아옵니다. 2013년 브루셀라병이 안성 일대에 퍼지면서 자식처럼 길러오던 소 100여 마리를 폐사 처분해야 했습니다. 농장 운영에 뛰어든 뒤 처음 겪는 큰 시련이었습니다. 농사를 그만두겠다는 마음으로 농장을 정리하고 반 년 넘게 고향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피해가 컸을 텐데요.
“폐사 처분으로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 제대로 계산해보지 않았습니다. 자식이 죽었을 때 부모가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 따지지 않잖아요.”
▷다시 농부로 돌아온 이유는 뭔가요.
“소를 폐사 처분한 뒤 경기 용인시에 있는 전자제품업체 생산공장에서 일했어요. 반 년 넘게 일했는데 빡빡하게 짜인 조직 생활이 저와 잘 맞지 않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농부로 살겠다고 다짐했는데 한번 넘어졌다고 포기하는 것도 영 이상하고…. ”
짧은 방황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위기는 또다시 찾아왔습니다. 2014년 말부터 새로 한우 수십 마리를 기르기 시작했는데, 소값이 급락한 겁니다. 사료값도 건지기 힘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윤 대표는 “아내의 패물을 팔아 밀린 사료값을 갚으면서 생각해보니 그냥 소만 키워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낙농체험농장인 풀무골에듀팜입니다. 경기도 농업기술원과 안성시 농업기술센터의 지원을 받아 작년 봄에 문을 열었습니다. 지난해에만 500여 명이 찾았다고 합니다.
FARM 홍선표 기자
(총 2700자 분량으로 지면 사정상 줄여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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