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비즈니스 상황판'도 설치해야
근로자가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생산량은 추가로 늘어난다.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추가로 늘어나는 생산량을 한계생산물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보자. 밭의 면적이 고정돼 있는 상황에서 계속 근로자를 늘리면 어느 순간부터 한계생산물이 줄어든다. 고용이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추가로 더 고용해 봤자 생산량이 거의 증가하지 않아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다. 이것이 바로 ‘한계생산물 체감의 법칙’이다. 밭의 넓이가 고정된 상황에서 고용을 자꾸 늘려봤자 인건비만 증가하고 매출은 늘어나지 않는 상황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밭의 면적이 늘어나면 얘기는 달라진다. 일자리도 늘고 산출물도 현저히 증가한다. 물론 이렇게 생산된 작물이 시장에서 잘 팔려야 한다. 농작물이 안 팔리거나 가격이 하락하면 밭의 넓이를 오히려 줄여야 하고 일자리도 감소한다. 이렇게 보면 밭의 면적이나 농작물 매출에 변화가 없는데 갑자기 일자리만 늘리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성이 없다. 오래 못 간다는 얘기다.

이런 논리를 제조업으로 확장해도 결론은 비슷하다. 밭의 면적이 늘어나는 것은 투자를 통한 생산설비 확장과 같고, 농작물이 잘 팔리는 것은 시장 상황이 긍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와 연결된다. 기업들이 투자를 통해 생산 규모를 늘리고 제품이 잘 팔리면 일자리는 자연히 늘어난다. 일자리는 투자와 시장수요로부터 도출되는 파생수요인 것이다.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이 설치됐다고 한다.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일자리는 종속변수이자 파생수요라는 점이다. 기업 투자가 증가하고 영업 환경과 시장 상황이 개선돼야 일자리가 늘어난다. 그런데 지금 우리 기업들은 어떤가. 저성장 고령화 시대를 맞아 영업환경은 악화되고 있고 또 많은 기업들이 정부 규제에 허덕이고 있다. 규제의 숫자도 많고 강도도 세다. 게다가 세금은 물론 준조세 압박도 심하다. 새로운 상황에 맞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도 많다.

더구나 우리 기업 생태계에 대해서는 ‘피터팬 신드롬’이라는 용어까지 회자되고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이 많은데 중소기업을 졸업하는 순간 이들 지원 프로그램이 모두 끊긴다. 이러다 보니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 기업 규모를 안 늘리려고 애를 쓰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어른이 되지 않은 피터팬들이 기업 생태계에 즐비하다. 기업 규모가 커지지 않으니 일자리도 늘어나지 못한다. 중소기업 지원이 화끈한 만큼 피터팬 신드롬도 강하게 작동하고 일자리 증가는 더뎌지고 있다.

답답한 나머지 정부가 직접 나서서 공공 부문 일자리를 늘리려고 하지만 이는 세금 부담이 너무 크다. 공무원 한 명을 고용하면 급여는 물론 퇴직 후 연금과 사망 시 유족에게까지도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급여를 제외하고도 현재 100여만 명에 달하는 공무원과 19만 명에 달하는 직업군인에 대한 연금 때문에 국가가 부담해야 할 부채가 750조원 정도로 계산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공무원을 17만4000명 늘리면 이들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과 관련한 국가 부채가 단순 계산으로도 108조원이 추가된다. 어마어마한 부담이 젊은 세대에 전가되는 것이다.

이제 청와대의 ‘일자리 상황판’ 옆에 ‘비즈니스 상황판’도 설치해야 한다. 일자리 증가를 억제하는 규제의 숫자와 강도, 영업 환경, 조세와 준조세 규모, 경영권 유지 비용, 수출 환경 등도 실시간으로 파악돼야 한다. 비즈니스 상황판에 변화가 없는데 일자리 숫자만 증가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일자리 상황판의 불이 꺼지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늘어난 일자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두 상황판이 동시에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 요구만으로 근로자 숫자와 급여의 증가를 기대하는 것은 미흡하다. ‘일자리 상황판’과 ‘비즈니스 상황판’에 모두 불이 켜져야 한다. 상황에 대한 복합적 인식이 절실한 시점이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chyun3344@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