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자금 대수술…좀비기업 퇴출해야 벤처 생태계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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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FROM 100 - 새정부에 바란다 : 4차 산업혁명 전략 - 벤처 활성화
유사·중복 정책자금 통폐합
펀드 숫자 현재의 3분의 1로 될 만한 기업에만 집중 투자
지원 기업 많으면 높은 점수, 정책자금 성과평가도 개선을
벤처 시장에 대기업 참여하게 규제 풀고 M&A장려정책 펴야
유사·중복 정책자금 통폐합
펀드 숫자 현재의 3분의 1로 될 만한 기업에만 집중 투자
지원 기업 많으면 높은 점수, 정책자금 성과평가도 개선을
벤처 시장에 대기업 참여하게 규제 풀고 M&A장려정책 펴야
“명확한 타깃 없이 불어난 정책 자금 탓에 스타트업계는 변비에 걸렸다.”(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 “정부 지원이 아니라 시장 수요가 있는 곳에 창업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겸 핀테크지원센터장)
문재인 정부가 내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육성과 벤처 시장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중복·유사 정책 자금을 대거 손질해 경쟁력 없는 기업은 자연 도태하고 잠재력 있는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생태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견 학자와 신(新)산업 전문가가 주축이 돼 설립한 민간 싱크탱크 FROM 100과 한국경제신문사가 지난 26일 서울 광화문 한국생산성본부 대강당에서 두 번째로 연 ‘새 정부의 정책 과제’ 토론회에서다.
새 정부가 중소기업벤처부를 확대·신설하는 등 벤처 시장 활성화를 정책 우선 과제로 제시했지만 양적인 지원 확대에만 매몰돼선 자발적인 민간 투자와 이에 따른 고용 확대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새 정부의 벤처 활성화와 정보기술(IT)·금융산업 전략에 대한 제언을 위해 모인 참석자들은 “지원 금액과 대상 기업 수에만 목매는 정책 방향은 다 자란 30대 자녀를 부모가 업어 키우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펀드 공장’식 지원 아닌 시장 형성부터”
‘창업국가 건설’을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는 정책성 출자금인 모태펀드 확대, 청년 벤처창업 제품 등에 대한 공공구매와 판로 지원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지원금만 앞세운 ‘펀드 공장’식 지원은 오히려 벤처 시장의 자생력을 떨어뜨린다는 게 참석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기대 이사는 “펀드 결성 숫자를 정부의 벤처 사업 성과로 인식하는 경향 때문에 국내 벤처 시장이 ‘고인 물’이 돼가고 있다”며 “정책 자금 성격의 펀드 수를 현재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고 경쟁력 있는 기업에 투자 금액을 늘리는 게 오히려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는 “생계형 창업과 모험형 창업을 명확하게 구분해 정책과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며 “유사·중복 지원 사업을 정리하기 위해선 스타트업 정책의 주무부서 위상을 높이고 지원 정책을 총괄하는 혁신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들 조직은 관료보다 창업계의 명망있는 인사를 영입해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본 대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5분의 1 수준이지만 스타트업 숫자는 비슷하다”며 “자금 공급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매일 수많은 스타트업이 쏟아지고 있는데 정책 자금에 기댄 이른바 ‘좀비 벤처’들이 사라지지 않으면서 적정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자발적인 민간 투자와 투자 회수 등 시장 선택이 일어나지 않고 시장 수요가 아니라 정부 지원이 있는 곳에만 창업이 집중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리스크 회피 조장하는 평가 지표”
경쟁력 없는 기업에 정부 자금이 지속적으로 투입되는 구조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정유신 교수는 “정부의 역할은 제대로 된 시장을 형성해주는 일”이라며 “정부는 각종 인프라 구축을 통해 창업 비용을 낮추는 데 집중하면서 벤처 투자 운용 성과에 대한 평가 지표를 손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성과평가 지표를 보면 지원 대상 기업 수가 많을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또 리스크가 높은 사업 모델에 투자해 손실을 입으면 다음번 자금 확보에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
권일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돈을 쥐여 주면서 ‘까먹으면 안 돼’라는 식의 압박을 하게 되면 계산되지 않는 리스크를 회피할 수밖에 없고, 결국 ‘진짜 벤처 투자’는 요원해진다”며 “투자 집행을 위한 심사위원들이 선호하는, 검증되고 익숙한 사업 모델을 제시하는 벤처기업들만 정책 자금을 받게 된다”고 했다.
◆“대기업 시장 참여도 키워야”
대기업을 벤처 시장에 적극 참여시켜야 한다는 데도 공감대가 형성됐다. 미국·유럽 등에선 ‘투자→회수→재투자’의 생태계 선순환에 대기업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한국에선 그렇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준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대기업의 공정 거래와 경쟁을 촉진하고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나 인수를 장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투자 회수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인수하는 대기업에 각종 규제를 완화해주는 정책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역시 “대기업과의 관계 협조를 외면한 정부 주도의 일자리 창출에는 한계가 있다”며 “4차 산업혁명 관련 업종에서 해외 기업이 국내로 들어오는 것에 비해 해외로 나가는 국내 기업이 1.5배 정도 많아 앞으로 일자리 창출의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는 스타트업 시장이 그 역할을 못 하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 FROM 100은
한국 대표 지식인 100여 명으로 구성된 민간 싱크탱크다. FROM 100은 미래(future), 위험(risk), 기회(opportunity), 행동(movement)의 머리글자에 100인으로 구성됐다는 의미의 숫자 100을 붙였다.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주도로 2016년 10월 출범했다. 연구력이 왕성한 중견 학자와 신(新)산업 부문 젊은 지식인이 주축이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문재인 정부가 내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육성과 벤처 시장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중복·유사 정책 자금을 대거 손질해 경쟁력 없는 기업은 자연 도태하고 잠재력 있는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생태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견 학자와 신(新)산업 전문가가 주축이 돼 설립한 민간 싱크탱크 FROM 100과 한국경제신문사가 지난 26일 서울 광화문 한국생산성본부 대강당에서 두 번째로 연 ‘새 정부의 정책 과제’ 토론회에서다.
새 정부가 중소기업벤처부를 확대·신설하는 등 벤처 시장 활성화를 정책 우선 과제로 제시했지만 양적인 지원 확대에만 매몰돼선 자발적인 민간 투자와 이에 따른 고용 확대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새 정부의 벤처 활성화와 정보기술(IT)·금융산업 전략에 대한 제언을 위해 모인 참석자들은 “지원 금액과 대상 기업 수에만 목매는 정책 방향은 다 자란 30대 자녀를 부모가 업어 키우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펀드 공장’식 지원 아닌 시장 형성부터”
‘창업국가 건설’을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는 정책성 출자금인 모태펀드 확대, 청년 벤처창업 제품 등에 대한 공공구매와 판로 지원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지원금만 앞세운 ‘펀드 공장’식 지원은 오히려 벤처 시장의 자생력을 떨어뜨린다는 게 참석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기대 이사는 “펀드 결성 숫자를 정부의 벤처 사업 성과로 인식하는 경향 때문에 국내 벤처 시장이 ‘고인 물’이 돼가고 있다”며 “정책 자금 성격의 펀드 수를 현재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고 경쟁력 있는 기업에 투자 금액을 늘리는 게 오히려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는 “생계형 창업과 모험형 창업을 명확하게 구분해 정책과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며 “유사·중복 지원 사업을 정리하기 위해선 스타트업 정책의 주무부서 위상을 높이고 지원 정책을 총괄하는 혁신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들 조직은 관료보다 창업계의 명망있는 인사를 영입해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본 대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5분의 1 수준이지만 스타트업 숫자는 비슷하다”며 “자금 공급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매일 수많은 스타트업이 쏟아지고 있는데 정책 자금에 기댄 이른바 ‘좀비 벤처’들이 사라지지 않으면서 적정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자발적인 민간 투자와 투자 회수 등 시장 선택이 일어나지 않고 시장 수요가 아니라 정부 지원이 있는 곳에만 창업이 집중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리스크 회피 조장하는 평가 지표”
경쟁력 없는 기업에 정부 자금이 지속적으로 투입되는 구조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정유신 교수는 “정부의 역할은 제대로 된 시장을 형성해주는 일”이라며 “정부는 각종 인프라 구축을 통해 창업 비용을 낮추는 데 집중하면서 벤처 투자 운용 성과에 대한 평가 지표를 손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성과평가 지표를 보면 지원 대상 기업 수가 많을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또 리스크가 높은 사업 모델에 투자해 손실을 입으면 다음번 자금 확보에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
권일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돈을 쥐여 주면서 ‘까먹으면 안 돼’라는 식의 압박을 하게 되면 계산되지 않는 리스크를 회피할 수밖에 없고, 결국 ‘진짜 벤처 투자’는 요원해진다”며 “투자 집행을 위한 심사위원들이 선호하는, 검증되고 익숙한 사업 모델을 제시하는 벤처기업들만 정책 자금을 받게 된다”고 했다.
◆“대기업 시장 참여도 키워야”
대기업을 벤처 시장에 적극 참여시켜야 한다는 데도 공감대가 형성됐다. 미국·유럽 등에선 ‘투자→회수→재투자’의 생태계 선순환에 대기업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한국에선 그렇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준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대기업의 공정 거래와 경쟁을 촉진하고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나 인수를 장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투자 회수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인수하는 대기업에 각종 규제를 완화해주는 정책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역시 “대기업과의 관계 협조를 외면한 정부 주도의 일자리 창출에는 한계가 있다”며 “4차 산업혁명 관련 업종에서 해외 기업이 국내로 들어오는 것에 비해 해외로 나가는 국내 기업이 1.5배 정도 많아 앞으로 일자리 창출의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는 스타트업 시장이 그 역할을 못 하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 FROM 100은
한국 대표 지식인 100여 명으로 구성된 민간 싱크탱크다. FROM 100은 미래(future), 위험(risk), 기회(opportunity), 행동(movement)의 머리글자에 100인으로 구성됐다는 의미의 숫자 100을 붙였다.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주도로 2016년 10월 출범했다. 연구력이 왕성한 중견 학자와 신(新)산업 부문 젊은 지식인이 주축이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