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단 3D낸드' 양산을 알리지 말라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는 5개월째 세상에 존재를 알리지 못하고 있는 신제품이 있다. 올초부터 양산에 들어간 64단 3차원(3D) 낸드플래시다. 삼성전자는 새로운 반도체를 생산하면 거래처에 해당 내용을 알리고 언론에도 공개했다. 제품 판로를 개척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64단 3D 낸드의 양산 사실은 아직 외부에 밝히지 않고 있다.

제품이 별 볼 일 없어서가 아니다. 도시바와 마이크론 등 글로벌 경쟁자는 48단 3D 낸드를 생산하는 데 그치고 있다. 낸드플래시를 수직으로 쌓은 3D 낸드는 단수가 높아질수록 집적도가 올라가고 전력 효율도 좋아진다. 그만큼 높은 값에 팔 수 있다. 삼성전자가 3D 낸드를 처음 상용화한 2013년 이후 관련 기술을 주도하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도 크다.

삼성전자가 양산 발표를 미루는 이유는 거래처와의 관계 때문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64단 3D 낸드를 원하는 고객사는 많지만 경기 화성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량으로는 수요를 충족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며 “제때 물량을 공급하지 못하면 고객사와의 관계가 틀어질 수 있어 발표를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생산되는 64단 3D 낸드는 삼성전자 내부 수요처와 일부 글로벌 대형 거래처에 알음알음 공급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상황은 경기 평택 반도체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다음달 말부터 풀릴 것으로 보인다. 64단 3D 낸드를 주력으로 하는 평택 공장에서 고객 수요의 상당 부분을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실적발표회 때 “64단 3D 낸드는 2분기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힌 것도 이를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다. D램과 낸드를 막론하고 수요가 몰리면서 불황기였다면 나서서 알렸을 신제품 발표가 미뤄지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