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의 논점과 관점] 건설사의 '4대강 트라우마'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대규모 손실, 과징금, 형사 처벌, 이미지 실추 등으로 건설사들이 만신창이가 됐죠.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는데 또다시 감사를 한다니 악몽이 재연될까 두렵습니다.”(한 대형 건설사 임원)

감사원이 최근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등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 공익감사청구 수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사전조사에 착수하자 건설사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미 수년 전 입찰 담합 등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건설사들이 다시 불똥이 튈까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건설사들의 ‘4대강 상흔(傷痕)’은 생각보다 깊다. ‘국책사업에 동원돼 적자를 내면서까지 강행군했지만 건설사들만 처벌받았다’는 피해 의식이 뿌리 깊다. 가뭄과 홍수를 막고 물 부족 해결에 기여했지만 부실 시공 논란과 수질 악화 탓에 지금도 환경단체 등으로부터 비난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다시 도마에 오른 4대강 사업

원인이야 어찌됐든 건설사는 불법 행위(담합) 당사자여서 하소연도 못하는 처지다. 건설사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조그마한 건물을 짓는 데도 1~2년 걸리는데 대한민국 물줄기를 바꾸는 대역사(大役事)를 3년여 만에 끝내려다 보니 상식적으로도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담합은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지만 건설사들은 당시 상황도 감안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4대강 사업 이전에는 국내 대형 건설사들도 대규모 하천정비 설계 및 시공 능력이 부족했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에 맞춰 입찰과 공사가 촉박하게 진행돼 건설사들은 입찰 공구를 사전에 나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촉박한 공기(工期) 탓에 휴일도 없이 야간작업을 벌이다 보니 부실 논란도 덩달아 불거졌다는 설명이다. 추가 공사도 떠맡아 4대강 참여 업체의 전체 손실은 약 2500억원에 이른다.

담합의 후폭풍은 거셌다. 이명박 정부 때 두 차례, 박근혜 정부 때 한 차례 등 지금까지 세 차례의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경찰, 검찰 조사도 이어졌다. 공정위는 2012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24개 국내 주요 건설사들에 약 1270억원의 담합 과징금을 부과했다. 19명의 건설사 임직원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담합 처벌’ 전력 탓에 국내 건설사들은 일부 해외 입찰에서 배제되는 등 적지 않은 불이익도 당했다.

"건설문화 혁신 계기 되길"

건설업계는 ‘죗값’을 치렀고, 2015년엔 사면도 받았지만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정책 과정과 집행 과정을 따져보는 정책감사라고는 하지만 4대강 사업이 워낙 찬반이 극명하게 갈렸던 사안이어서 다시 부각되면 사업 추진 당시의 논란이 재연될 수 있어서다. 환경 훼손과 경제성 논란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또다시 건설사들이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A건설사 임원은 “정책을 입안하고 공사 참여를 독려한 공무원들은 책임지지 않고 건설사만 뭇매를 맞았던 예전 상황이 다시 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책감사가 처벌보다는 국책 사업과 건설산업 투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기회에 건설사들은 입찰 및 하도급 비리를 근절하고, 정부도 ‘나눠먹기 입찰’ 원인으로 작용하는 저가 낙찰제 등 공공입찰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설산업 선진화는 처벌보다는 업체 및 정부의 자정 노력과 제도 개선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