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구글의 'AI 잔치'가 불편한 이유
“모바일 시대는 끝났다. 이제 인공지능(AI) 시대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서 열린 올해 연례 개발자회의(I/O)에서 AI 시대 개막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AI가 일반인들의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라는 게 피차이 CEO의 핵심 메시지였다.

말뿐이 아니었다. 그는 ‘AI 시대’의 근거로 영상이나 이미지 정보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구글 렌즈’를 제시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식당 간판을 비추면 이 식당의 맛있는 메뉴가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어떤지 등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AI 기반 앱(응용프로그램)이다. AI를 활용한 음성 인식 기술도 이전보다 한 단계 더 발전했다. 음성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에 “엄마에게 전화 연결”을 주문하면 자신을 부른 사람이 누구인지를 파악한 후 사용자의 요청을 처리한다.

실리콘밸리에선 벌써부터 스마트폰 시대의 종언을 점치는 전문가들이 나온다. 스마트폰 사업을 근간으로 하는 삼성이나 LG로선 무서운 얘기다. 영상과 음성으로 인터넷을 활용할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게 되면 ‘터치’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폰의 설 자리가 사라진다는 논리다.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전문 분야에서도 AI의 위상이 더 커지고 있다.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의 대국으로 유명해진 구글의 바둑 AI 알파고가 지난 23~27일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열린 ‘바둑의 미래 서밋’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중국 커제 9단과의 3번기에서 전승을 거뒀다. 이번에 대국에 임한 알파고는 기보 입력 없이 스스로와 바둑을 두는 ‘셀프 대국’만으로 인간 기사들을 압도하는 실력을 발휘했다. 적어도 바둑에선 인간이 AI의 상대가 안 된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문제는 빠르게 진화하는 글로벌 AI 생태계에 한국 기업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국내 대기업은 물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중에서도 AI 생태계를 놀라게 할 게임 체인저가 보이지 않는다”(이헌수 KIC 실리콘밸리센터장)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구글의 ‘AI 잔치’가 편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송형석 실리콘밸리/IT과학부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