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행사지침)’를 도입하는연기금에 기금평가 시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빠른 정착을 위해선 총자산 565조원 규모(지난해 기준) 국민연금,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등 3대 연기금의 참여가 필수적이란 판단에서다.

30일 정부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 연기금에 가점을 주는 방안을 기획재정부와 협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르면 내년 말 확정되는 ‘3대 연기금 평가지침’에 포함될 전망이다. 기재부는 국가재정법 82조에 따라 기금의 사업성과 자산운용 실태 등을 평가해 매년 5월 발표한다.

정부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업계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데 거부감이 크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연기금과 자산운용업계는 “주식 운용상 제약만 늘어날 뿐 별다른 실익이 없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제한된 인력 내에서 의결권 행사를 담당할 인력을 새로 뽑는 것도 부담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원칙을 공표한 지 다섯 달이 지났지만 참여를 선언한 기관이 JKL투자파트너스 한 곳에 불과한 이유다. 이 회사는 경영 참여를 목적으로 기업 지분을 산 뒤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사모펀드(PEF)여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게 별로 없다.
의결권 적극 행사한 연기금에 인센티브
“운용사 참여 잇따를 듯”

정부가 행정력을 동원해 매년 실시하는 연기금 평가 방식을 바꾸면 상황이 달라진다. 연기금들은 운용 수익률 못지않게 기금평가 결과를 중시한다. 정부 관계자는 “경영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으면 성과급과 인사, 예산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며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에 적잖은 압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기금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운용하는 위탁운용사 선정 방식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연기금들은 위탁운용사를 선정할 때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 기관만 대상으로 하거나 평가 과정에 가점을 주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이렇게 되면 연기금의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로서는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은 위탁운용사 선정 때 △경영 안정성 △운용조직 및 인력 △운용성과 등 여섯 가지 항목으로 나눠 점수를 매긴다. 이 평가 항목에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 여부가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연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가 이어지면 주식시장이 한 단계 더 ‘레벨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장 큰 효과는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유입이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지금은 국민연금 등 국내 연기금이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식물 주주’에 가깝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는 “국민연금이 보유한 상장사 지분 가치가 102조6000억원으로 100조원이 넘고 5% 이상 대량 지분을 가진 상장사만 285곳에 달하지만 주주로서 제 목소리를 낸 기억은 별로 없다”며 지적했다.

새 정부들어 지주사 급등

일본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이듬해인 2015년 닛케이지수가 15년 만에 20,000선을 뚫고 올라가기도 했다. 외국인 투자자 비중은 30%를 넘어서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5년 일본 기업들의 배당금 총액도 11조8000억엔으로 역대 최대였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북한 리스크(위험)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문제에 더 관심이 많다”며 “연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가 이어지면 증시가 더욱 탄력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기대를 반영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기업 계열 지주회사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지난 10일 이후 29일까지 LG와 SK, CJ, GS, 두산 등 주요 8개 대기업 지주회사 주가는 평균 15.04% 올랐다. 지배구조 개선 이슈가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도 승승장구다. ‘알리안츠기업가치향상’ 펀드 등 3개 펀드는 연초 이후 평균 15% 넘는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라임자산운용의 ‘데모크라시’ 펀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8.89%의 수익률을 냈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는 “연기금 등의 의결권 행사가 강화되면 비핵심부문을 떼내면서 사업회사의 효율성이 높아지거나 배당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많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자율 참여 원칙으로 시작된 스튜어드십 코드가 사실상 ‘의무 사항’이 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애초 시장 자율에 맡긴다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고 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