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31일 무거운 표정으로 서울 국방부 청사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31일 무거운 표정으로 서울 국방부 청사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가 31일 문재인 대통령 지시에 따라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장비 추가 반입에 대한 진상조사를 한 지 하루 만에 ‘국방부의 의도적 보고 누락’으로 결론 내린 것은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을 물갈이하고 국방 개혁 동력을 확보하려는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사드 배치 과정 전반을 살펴보기 위해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직접 청와대로 불러 조사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딕 더빈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를 면담한 자리에서 “사드 철회는 절대 없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번 사드 논란이 6월 말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주요 현안으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한 장관이 청와대 결론을 인정하지 않고 야당이 문 대통령의 조치를 비판하고 있어 사드 장비 추가 반입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청와대, 사드 전면 조사 공식화

청와대 "사드 6기 문구 삭제 확인"…한민구 국방 "지시한 일 없다"
청와대는 국방부가 사드 발사대 4기를 추가 반입한 사실을 고의로 누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북 성주골프장에 사드 발사대 6기를 배치하기로 결정한 뒤 먼저 2기를 반입하고 4기를 추가로 국내에 들여와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청와대에 정확히 보고했어야 하는데도 핵심 문구를 삭제했다는 게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결론이다. 또 처음엔 발뺌하다 전모가 드러난 뒤 뒤늦게 시인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건의 성격을 사실상 ‘국기문란’으로 보는 셈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지난 26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국방부 정책실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으나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어 이상철 안보실 1차장이 보고가 끝난 뒤 보고에 참석한 관계자 한 명을 자신의 사무실로 따로 불렀다.

세부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하던 중 사드 4기의 추가 배치 사실을 최초로 인지하게 됐다. 이틀 뒤 정 실장이 한 장관과 오찬을 하며 “사드 4기가 추가 반입됐다는데요”라고 물었으나 한 장관은 “그런 게 있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다음날 정 실장은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문 대통령은 지난 30일 한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드 발사대 4기를 추가 반입한 점을 알게 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이런 사실관계를 최종 확인하기 위해 김 전 실장과 한 장관을 직접 조사하기로 했다.

바로 반박한 국방부 장관

핵심 관련자인 한 장관은 청와대 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한 장관은 이날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사드 발사대 4기 반입 사실을 누락한 경위에 관한 질문에 “지시한 일이 없고 지시할 일도 아니다”고 답했다. 이어 “사드 발사대 개수를 보고서에서 빠뜨린 것은 실무진이며 실무자들은 표현 속에 (사실상) 포함됐다고 봐서 숫자 표기를 안 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드 발사대 4기 반입에 관해 묻고 답했다’는 청와대 측 발표에는 “대화하다 보면 서로 관점이 다를 수 있고 뉘앙스라든지 이런 데서 그런 차이점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서로 주고받은 것을 이해하는 수준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런 정도”라며 “그 정도로 이해해달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한 장관이 반어적으로 대답할 사안이 아니다”며 “향후 조사에서 드러날 것”이라고 반박했다. ‘지시한 적 없다’는 한 장관의 발언에 “국방부 내부에서 보고서를 강독할 때 한 장관이 참여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논란이 사드 배치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문제로 확산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이 사드와 관련해 환경영향평가를 받고 국회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현재 여권 내부에서는 사드 배치의 국회 비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 야당은 국회 비준 사항이 아니라며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사드 배치 찬성 속에 비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