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네이버 FARM] 전통주가 올드하다구요? 주당 언니가 새롭게 권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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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처음 술을 마신 건 초등학교 6학년. 아버지가 건네주는 술잔을 받았을 때였다. 집에서 만든 담금주가 그녀의 첫 술이었다. 이후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때마다 기회를 엿봤다. 아버지로부터 한 잔씩 받아마시며 주도를 익혔다. 그렇게 익힌 ‘가락’이 빛을 본 건 대학 시절. 온갖 술을 섭렵하며 동기들 사이에서 술의 어머니, ‘주모(酒母)’라고 불렸다. 그녀가 이제 전통주를 소개하는 사람이 됐다. 쉽고 재미있는 전통주 안내서, 대동여주도(酒) 제작자인 이지민 PR5번가 대표 얘기다.
대동여주도(blog.naver.com/prnprn)의 전통주는 도통 진지하지가 않다. 가볍다. 톡톡 튄다. 전통주가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인식을 깬다. 예를 들어 이기숙 명인이 빚는 감홍로를 설명할 때, 이 대표는 별주부전 이야기를 끌어온다. 자라가 토끼를 꼬드기는 장면을 묘사한다. “용궁에 가면 감홍로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말한 그 순간이다. 이강주는 여름 초승달 같은 술이라고 한다. 문배술은 숙취가 없음을 강조한다.
보통 전통주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할아버지, 한복, 오래됨 등)와 이 대표는 정반대다. 세련되고 발랄하다. 2014년 시작된 전통주 전문 콘텐츠 대동여주도는 우리나라 방방곳곳의 명주를 소개한다. 만화나 카드뉴스, 포스터 같은 방식이다. 한자어나 어려운 말은 하나도 없다. “전통주의 낡은 이미지에 새 옷을 입혀주고 싶었어요.”(이지민 대표)
이 대표가 전통주를 소개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운명이다. 대학 졸업 후 들어간 홍보회사에서 주류 부문을 오래 맡았다. LG상사에서 하는 와인 사업에도 참여했다. CJ에선 음료사업부에 있었다. 사실 술을 워낙 좋아한다. PD인 남편과는 둘 다 술을 좋아해서 만났다. 시어머니와 만나도 술잔 맞대 ‘짠’한다. 술과 일하며 바친 시간만 10년이 훌쩍 넘는다. “시댁에선 술 마시는 며느리 싫어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희 가족은 모이면 각자 좋아하는 술을 꺼내놓고 같이 마셔요.”
술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던 이 대표도 전통주는 잘 몰랐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면 전통주 코너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운명은 4년 전 찾아왔다. CJ 음료사업부를 나오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던 차였다. 지인의 권유로 찾게 된 전통주 양조장이 이 대표의 운명을 바꿨다.
충격이었다. 기가 막혔다. “해외 와이너리들 가보면 와아! 이래요. 멋있거든요. 큰 오크통 있고, 멋진 오너가 설명해주고요. 그런데 전통주 양조장은 그런 느낌이 아니예요. 시골 구석에 있는 곳을 가보면, 오래되고 낡은 양조 탱크가 있고, 가면 어르신들이 무심하게 그냥 ‘왔어요’ 이래요. 시골 할아버지 보는 느낌이죠. 와인 보다가 전통주를 보니까, 벤츠 보다가 손수레를 보는 것 같았어요.”
이 대표는 양조장에 가서 명인들 술 빚는 이야기를 듣고, 같이 술을 먹고 하는게 좋았다. “우리 술은 우리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잖아요. 이야기가 있어요. 주지스님이 만드는 술도 있고, 평생을 술 빚느라 가산을 탕진하신 분도 있어요.” 그런 이야기들이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지금 양조장들이 힘듭니다. 대가 끊길 것 같은 곳도 많아요. 이렇게 이야기가 풍부하고 재료가 좋은데도요. 그런 다채로운 매력이 대중에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왜 전통주를 좋아하지 않을까. 자료를 찾아봤다. 그동안 전통주를 소개한 콘텐츠들이 일반인들에겐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한자가 워낙 많았다. 소개 방식도 옛날 책자 위주였다. 바쁜 현대인들의 관심을 끌려면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고 봤다. “낡고, 오래되고, 할아버지 같고, 어렵고, 그래서 가까이 하기 싫고. 전통주가 그런 이미지였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그럼, 거꾸로 가보자!”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톤 앤 매너’의 전통주 콘텐츠를 구상했다. “와인은 전문가가 많지만 전통주는 그렇지가 않았어요. 젊은 사람이 꾸리는 콘텐츠는 더더욱 없었고요. 그래서 오히려 희소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콘텐츠 이름은 대동여주도라고 지었다. 전국의 명주를 소개한다는 데서 착안했다. 소개하는 통로는 네이버 블로그와 페이스북 같은 SNS를 썼다. “양조장 중엔 페이스북을 안하는 곳이 많았어요. 열심히 술을 빚기만 하셨죠. 그걸 대중에게 알리는 게 제 역할입니다.”
톡톡 튀는 이야기를 덧입혔다. 술의 유래와 특징, 어울리는 안주, 맛집, 명인들의 스토리를 모두 모아 엮었다. 전통주 칵테일 레시피도 짰다. 그렇게 만든 레시피는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 “오디 술 ‘이강뎐’으로 만드는 칵테일 ‘스파이시 레이디’, 알싸하면서도 매콤한 스파이시 레이디의 맛이 까칠하면서도 도도한 여성을 떠올리게 한다.”
문배술, 이강주, 매실원주의 ‘훈남’ 대표들을 한자리에 모아 함께 술을 마시는 이벤트도 열었다. 여성 전통주 팬과 훈남 대표와의 기념사진 촬영 시간은 덤. “전통주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다만 그동안 그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해줄 사람이 부족했던 거죠.”
다행히 최근 전통주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 “3~4년 전만 해도 막걸리 주점은 있었지만 전통주 주점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엔 많아졌잖아요. 파인 다이닝에서도 전통주를 많이 갖다놓습니다. 와인에 지겨워진 사람들이 오히려 전통주를 찾아요.”
전통주가 대중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달라졌다. 세련된 포장에, ‘떠먹는 막걸리’ 같은 신제품도 나온다. “전통주를 알고 싶다고 문의하는 분들도 많고, 직접 빚으시는 분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전통주를 비싸고, 독한 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여전히 많아서다. 이 대표는 그게 안타깝다고 했다. “전통주는 하나로 묶을 수가 없어요. 종류가 너무 다양하니까요. 이름은 같은 소주라도, 증류식 소주랑 희석식 소주랑은 완전히 다르거든요. 그런데 3000원짜리 희석식 소주 생각하면서 전통주를 비싸다고 하는 분이 아직도 많습니다.”
이런 인식을 깨는 게 자신이 더 해야할 일. “전통주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생각해보세요. 한약재, 좋은 물, 구기자 오미자 솔잎... 이런 것들이 맛과 향을 내는 좋은 술인데, 싸면 이상하지 않을까요. 직접 술을 한번 빚어보세요. 자기 자신이 빚은 술은 모두 맛있답니다. 전통주도 그래요. 명인들의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데, 그런 마음으로 한땀한땀 빚는 술은 그만큼 귀하고, 또 맛있죠.”
다른 꿈도 생겼다. 우리나라가 갖고 있지만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을 세상에 알리는 것. 예를 들면 농가나 항구, 특산물, 지역축제 같은 주제들이다. 이 대표는 쌀을 예로 들었다. “사람들이 쌀에 별로 관심이 없잖아요. 몇일에 도정을 했고 무슨 등급을 받았고 단백질 함량이 얼만지. 아는 사람이 없죠. 그런 것들도 제대로 콘텐츠화하면 얼마든지 읽힐 수 있어요.”
우선 올해는 양조장을 더 많이 돌아다닐 것이라고 했다. 전국에서 술을 마시고, 또 사람들이 그 술을 찾게끔 하는 게 목표다. “감홍로는 멸종 위기에 처한 술이예요. 경쟁력은 있지만,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해서죠. 귀한 전통주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술 땡기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FARM 고은이 기자
대동여주도(blog.naver.com/prnprn)의 전통주는 도통 진지하지가 않다. 가볍다. 톡톡 튄다. 전통주가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인식을 깬다. 예를 들어 이기숙 명인이 빚는 감홍로를 설명할 때, 이 대표는 별주부전 이야기를 끌어온다. 자라가 토끼를 꼬드기는 장면을 묘사한다. “용궁에 가면 감홍로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말한 그 순간이다. 이강주는 여름 초승달 같은 술이라고 한다. 문배술은 숙취가 없음을 강조한다.
보통 전통주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할아버지, 한복, 오래됨 등)와 이 대표는 정반대다. 세련되고 발랄하다. 2014년 시작된 전통주 전문 콘텐츠 대동여주도는 우리나라 방방곳곳의 명주를 소개한다. 만화나 카드뉴스, 포스터 같은 방식이다. 한자어나 어려운 말은 하나도 없다. “전통주의 낡은 이미지에 새 옷을 입혀주고 싶었어요.”(이지민 대표)
이 대표가 전통주를 소개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운명이다. 대학 졸업 후 들어간 홍보회사에서 주류 부문을 오래 맡았다. LG상사에서 하는 와인 사업에도 참여했다. CJ에선 음료사업부에 있었다. 사실 술을 워낙 좋아한다. PD인 남편과는 둘 다 술을 좋아해서 만났다. 시어머니와 만나도 술잔 맞대 ‘짠’한다. 술과 일하며 바친 시간만 10년이 훌쩍 넘는다. “시댁에선 술 마시는 며느리 싫어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희 가족은 모이면 각자 좋아하는 술을 꺼내놓고 같이 마셔요.”
술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던 이 대표도 전통주는 잘 몰랐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면 전통주 코너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운명은 4년 전 찾아왔다. CJ 음료사업부를 나오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던 차였다. 지인의 권유로 찾게 된 전통주 양조장이 이 대표의 운명을 바꿨다.
충격이었다. 기가 막혔다. “해외 와이너리들 가보면 와아! 이래요. 멋있거든요. 큰 오크통 있고, 멋진 오너가 설명해주고요. 그런데 전통주 양조장은 그런 느낌이 아니예요. 시골 구석에 있는 곳을 가보면, 오래되고 낡은 양조 탱크가 있고, 가면 어르신들이 무심하게 그냥 ‘왔어요’ 이래요. 시골 할아버지 보는 느낌이죠. 와인 보다가 전통주를 보니까, 벤츠 보다가 손수레를 보는 것 같았어요.”
이 대표는 양조장에 가서 명인들 술 빚는 이야기를 듣고, 같이 술을 먹고 하는게 좋았다. “우리 술은 우리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잖아요. 이야기가 있어요. 주지스님이 만드는 술도 있고, 평생을 술 빚느라 가산을 탕진하신 분도 있어요.” 그런 이야기들이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지금 양조장들이 힘듭니다. 대가 끊길 것 같은 곳도 많아요. 이렇게 이야기가 풍부하고 재료가 좋은데도요. 그런 다채로운 매력이 대중에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왜 전통주를 좋아하지 않을까. 자료를 찾아봤다. 그동안 전통주를 소개한 콘텐츠들이 일반인들에겐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한자가 워낙 많았다. 소개 방식도 옛날 책자 위주였다. 바쁜 현대인들의 관심을 끌려면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고 봤다. “낡고, 오래되고, 할아버지 같고, 어렵고, 그래서 가까이 하기 싫고. 전통주가 그런 이미지였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그럼, 거꾸로 가보자!”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톤 앤 매너’의 전통주 콘텐츠를 구상했다. “와인은 전문가가 많지만 전통주는 그렇지가 않았어요. 젊은 사람이 꾸리는 콘텐츠는 더더욱 없었고요. 그래서 오히려 희소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콘텐츠 이름은 대동여주도라고 지었다. 전국의 명주를 소개한다는 데서 착안했다. 소개하는 통로는 네이버 블로그와 페이스북 같은 SNS를 썼다. “양조장 중엔 페이스북을 안하는 곳이 많았어요. 열심히 술을 빚기만 하셨죠. 그걸 대중에게 알리는 게 제 역할입니다.”
톡톡 튀는 이야기를 덧입혔다. 술의 유래와 특징, 어울리는 안주, 맛집, 명인들의 스토리를 모두 모아 엮었다. 전통주 칵테일 레시피도 짰다. 그렇게 만든 레시피는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 “오디 술 ‘이강뎐’으로 만드는 칵테일 ‘스파이시 레이디’, 알싸하면서도 매콤한 스파이시 레이디의 맛이 까칠하면서도 도도한 여성을 떠올리게 한다.”
문배술, 이강주, 매실원주의 ‘훈남’ 대표들을 한자리에 모아 함께 술을 마시는 이벤트도 열었다. 여성 전통주 팬과 훈남 대표와의 기념사진 촬영 시간은 덤. “전통주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다만 그동안 그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해줄 사람이 부족했던 거죠.”
다행히 최근 전통주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 “3~4년 전만 해도 막걸리 주점은 있었지만 전통주 주점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엔 많아졌잖아요. 파인 다이닝에서도 전통주를 많이 갖다놓습니다. 와인에 지겨워진 사람들이 오히려 전통주를 찾아요.”
전통주가 대중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달라졌다. 세련된 포장에, ‘떠먹는 막걸리’ 같은 신제품도 나온다. “전통주를 알고 싶다고 문의하는 분들도 많고, 직접 빚으시는 분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전통주를 비싸고, 독한 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여전히 많아서다. 이 대표는 그게 안타깝다고 했다. “전통주는 하나로 묶을 수가 없어요. 종류가 너무 다양하니까요. 이름은 같은 소주라도, 증류식 소주랑 희석식 소주랑은 완전히 다르거든요. 그런데 3000원짜리 희석식 소주 생각하면서 전통주를 비싸다고 하는 분이 아직도 많습니다.”
이런 인식을 깨는 게 자신이 더 해야할 일. “전통주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생각해보세요. 한약재, 좋은 물, 구기자 오미자 솔잎... 이런 것들이 맛과 향을 내는 좋은 술인데, 싸면 이상하지 않을까요. 직접 술을 한번 빚어보세요. 자기 자신이 빚은 술은 모두 맛있답니다. 전통주도 그래요. 명인들의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데, 그런 마음으로 한땀한땀 빚는 술은 그만큼 귀하고, 또 맛있죠.”
다른 꿈도 생겼다. 우리나라가 갖고 있지만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을 세상에 알리는 것. 예를 들면 농가나 항구, 특산물, 지역축제 같은 주제들이다. 이 대표는 쌀을 예로 들었다. “사람들이 쌀에 별로 관심이 없잖아요. 몇일에 도정을 했고 무슨 등급을 받았고 단백질 함량이 얼만지. 아는 사람이 없죠. 그런 것들도 제대로 콘텐츠화하면 얼마든지 읽힐 수 있어요.”
우선 올해는 양조장을 더 많이 돌아다닐 것이라고 했다. 전국에서 술을 마시고, 또 사람들이 그 술을 찾게끔 하는 게 목표다. “감홍로는 멸종 위기에 처한 술이예요. 경쟁력은 있지만,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해서죠. 귀한 전통주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술 땡기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FARM 고은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