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J노믹스, 속도조절이 필요한 이유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중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이다. 민간 기업의 컨설팅은 실패할 수 있어도 국가 정책은 실패해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의 경제철학인 제이(J)노믹스는 ‘소득주도성장’으로 압축된다. 가계가처분소득을 높여 가계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줘야 소비가 늘고 경제가 회복된다는 논리다. 소득주도성장을 격발시키는 방아쇠는 가계소득 증가다. 재정을 통한 공공 부문 일자리 창출, 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등은 가계소득을 늘려주자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인기를 끌기에 충분하다. 분배를 늘린다는 데 환호하지 않을 국민은 없다. 그리고 분배만 늘리는 게 아니라 성장의 열매도 챙길 수 있다고 하니 금상첨화다. 하지만 짚어야 할 것들이 있다. 분배를 통해 성장을 이끌겠다면 “성장을 이끌 분배할 그 무엇(소득)은 누가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의 논리 전개는 역진적이다. 문제(성장)를 푸는 것이 아니고 해(解·분배)를 먼저 제시하고 거기에 맞춰 문제를 내는 셈이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쉽지 않다. ‘분배를 통해 창출된 소득이 다음 기(期)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분배 요구량보다 적으면’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할 수밖에 없다. 이는 ‘분배를 통해 생산한 것으로, 성장에 필요한 분배 요구량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것은 ‘능력에 따라 생산’한 것으로 ‘필요에 따른 분배량’을 채우지 못해 만성적인 물자 부족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구조다.

소득주도성장은 논리적으로도 정합적이지 않다. 소비를 출발점으로 경제를 돌게 할 수는 있지만 소비가 늘어난다고 경제의 생산력이 확충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력은 자본축적량, 노동생산성, 기술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내수 진작이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만 공급 측면에서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없다. 소득주도성장은 경제성장과 경기순환을 혼동하고 있다. 소득은 성장의 결과일 뿐 원천일 수 없다.

공공 부문의 비정규직 제로(0)화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비정규직 개념은 2002년 노·사·정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노동시장 환경이 달라지고 새로운 고용 형태가 등장했는데도 15년 전 기준을 고집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정규직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주력 사업이 아닌 업무라면 전문업체에 아웃소싱을 맡겨 그들의 인력과 노하우를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완성차 조립업체가 엔진 등 핵심부품을 제외한 타이어와 시트, 백미러 등을 아웃소싱해 부착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문제의 본질은 임금격차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의하면 2002~2015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총액 비율은 0.77 대 0.23이다. 정규직의 임금총액 몫 77%가 정당한 근거를 갖는지 의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생산성이 아닌 머리띠에서 온 것이다. 힘으로 비정규직의 이익을 침탈한 것이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를 줄이는 것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보다 더 절실하다. 공공 부문의 비정규직 제로는 공공 부문의 경영을 더 방만하게 할 여지가 있다.

소비가 살아나지 않은 것은 소득 정체보다 고령화 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씀씀이를 감소시켰기 때문이다. 차라리 긴 호흡으로 구조 개혁 등을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또 취업유발계수를 높일 방법이 없다면 생산성 향상을 통해 고부가가치화를 꾀해야 한다.

공공 부문 일자리 만들기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나 적용되는 비상 대책이다. 연결고리가 없는 상황에서 마중물로 공공 부문 일자리가 늘면 민간 부문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일감이 있어야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시장에서 새로운 것을 포착하려는 노력이 일감을 만들어 낸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정부 능력을 과신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