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단순함의 역습
“우리 세대에게는 무엇이든 허락되고, 그래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선택의 범위도 그만큼 넓어진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뭐든 좋으니 어떤 기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기 마련이다.”

독일의 유명 저널리스트 올리버 예게스가 쓴 책 《결정장애 세대》에 나오는 내용이다. ‘햄릿 증후군’이라 불리는 현대인의 결정장애 현상은 정보 과잉에 따른 결과다. 정보의 양 자체도 많거니와 종류도 다양하고 복잡해 옥석을 가리기 쉽지 않다. 따라서 소비자는 긴 설명보다 빠르고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직관적 정보에 열광하게 된다.

최근 미국의 한 프로틴바 제조업체가 이런 심리를 반영해 폭발적인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알엑스(Rx)바’라는 제품을 통해서다. 이 제품의 포장지에는 큰 글씨로 단 네 줄만이 적혀 있다. ‘계란 흰자 3개, 땅콩 14알, 대추야자 2개’ 그리고 ‘No B.S.(엉터리 없음)’라는 글자다. 원재료를 직관적으로 명시하고, 각종 첨가물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을 ‘엉터리 없음’이란 두 단어로 정리했다. 화려한 그림과 광고 문구, 세세한 제품 정보 등을 배제하고 간결하고 직관적인 내용만 표기한 Rx바는 미국 시장에 출시된 2000여 개 프로틴바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제품이 됐다.

식품은 소비층이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그 어떤 제품보다 쉽고 명확한 정보 전달이 필요하다. 최근 필자의 회사는 간장 구매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많은 소비자가 제품 선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수많은 간장이 각기 다른 특징을 내세워 어렵게 정보를 제공하다 보니 정작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소비자는 습관적으로 구매하던 제품을 또 선택하거나 자신의 입맛과 맞지 않는 제품을 고르게 된다. 필자의 회사에서는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간장의 ‘맛’으로 제품을 구분해 출시하기로 결정했다. 깊고 풍부한 맛, 깔끔한 맛 등 취향에 따라 간장을 선택할 수 있다. ‘간장의 맛’이라는 보편적이고 직관적인 요소가 간장 하나 고르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소비자에게 선택의 기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은 힘’이라며 정보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보 과유불급’ 시대에 다량의 정보는 오히려 본연의 가치를 잃고 적절한 판단을 방해하는 요소로 전락할 수 있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정보를 소비자에게 특별한 가치로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임정배 < 대상 대표 limjungbae@daes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