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시위대가 지난달 30일 미국 뉴욕 맨하튼의 골드만삭스 본사 앞에서 채권 헐값 매입을 비판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뉴욕AFP연합뉴스
베네수엘라 시위대가 지난달 30일 미국 뉴욕 맨하튼의 골드만삭스 본사 앞에서 채권 헐값 매입을 비판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뉴욕AFP연합뉴스
베네수엘라 정부가 헐값에 국채를 판 돈으로 반정부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한 무기 구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살인적인 물가 상승을 대가로 발행한 국채를 통해 정부는 국민에게 총을 겨누고 글로벌 투자은행은 자금줄을 대며 투자 수익을 챙기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2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야당 지도자인 훌리오 보르헤스 국회의장은 “정부가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노무라홀딩스에 국채를 헐값에 팔아 마련한 돈 중 최소 3억달러(약 3362억원)를 러시아산 무기를 사들이는 데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르헤스 의장은 지난 1일 나가이 코지 노무라 최고경영자(CEO)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번 채권 투자가 정권 교체를 위해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수십만 베네수엘라 국민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기 위한 무기 구매를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앞서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CEO에게도 채권 매입에 항의하는 편지를 보냈다.

미국 최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28일 영국의 한 채권중개회사를 통해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PDVSA) 채권 28억달러어치를 31% 할인된 8억6500만달러에 매입했다. 일본계 노무라도 액면가 1억달러어치의 국채를 3000만달러에 사들였다.

골드만삭스 측은 베네수엘라 정부와 직접 접촉하지 않고 2차 시장에서 매입했으며,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물러날 경우 채권 가치가 두 배 이상 뛸 것을 기대해 투자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의 월가 투자 관행에 대한 비판론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 뉴욕의 골드만삭스 본사 앞에서는 ‘헝거본드(hunger bond)’ 매입 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기아(hunger)와 채권(bond)을 뜻하는 헝거본드는 베네수엘라 국채에 붙여진 이름이다. 세계 최대 원유생산국인 베네수엘라는 유가 하락으로 외화보유액이 바닥나자 식료품 등 생필품 수입을 제한하는 대신 해외채권 발행을 선택했다. 그 결과 연 700%가 넘는 살인적인 물가상승으로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

베네수엘라 기획부 장관을 지낸 리카르도 하우스먼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골드만삭스가 인권 관련 투자 원칙을 세웠지만 이번 매입으로 스스로 한 약속을 어겼다”고 비판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