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단의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2일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회의실. 새만금개발청의 업무보고를 받던 경제2분과 이개호 위원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새만금 개발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음에도 이날 새만금개발청의 업무보고 내용은 이를 충족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부터 “새만금 개발이 지지부진하다”며 개발청 공무원들의 반성을 촉구했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위의 ‘공무원 군기잡기’가 갈수록 세지고 있다. 업무보고에 대해 고압적인 자세로 공무원들을 질타하는가 하면 ‘입맛’에 맞는 보고를 받기 위해 닦달하는 사례가 줄을 이어서다. “완장 찬 점령군이 되지 않겠다”던 김진표 위원장의 약속은 공언(空言)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너무 나가는 국정위?…부처 보고에 "각오하라" "긴장하라" 으름장
◆으름장 놓는 국정기획위

이날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도 국정기획위에 호되게 당했다. 이틀 전 한국경제신문이 보도한 ‘신고리 원전 5·6호기 중단 재검토’ 기사가 발단이었다. 이 기사는 당초 문 대통령의 ‘탈(脫)원전’ 공약 중 하나인 신고리 원전 5·6호기 중단을 주민들의 반발 등에 밀려 수정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국정기획위는 산업부에 책임을 돌렸다. 대통령의 ‘원전정책 전환’ 공약에 대한 산업부의 이행 의지 부족이 이런 일을 낳게 했다는 것이다. 박광온 국정기획위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에너지 주무부처인 산업부의 공약 이행 의지가 미흡하다”며 공개적으로 산업부를 지목해 비판했다. 결국 국정기획위는 이날 산업부 공무원들을 다시 불러 거칠게 압박했다.

김 위원장은 국정기획위가 출범할 당시 “보수정부 10년간 정부 관료들의 철학이 잘못됐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겠다”고 했다. 지난달 29일에는 각 부처 업무보고에 대해 “많은 부처가 대통령 공약을 베껴오고 했지만 대체로는 기존 정책들을 길만 바꾸는 ‘표지 갈이’가 많았다”고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세종정부청사 한 공무원은 “공무원이란 게 정권이 바뀌면 달라진 방향에 맞출 수밖에 없는 게 운명 아니냐”며 “고압적인 표현을 들을 때마다 주눅이 들어 더 소극적으로 된다”고 했다.

◆모멸감 느끼는 공무원들

전 정부의 방침대로 정책을 추진했다는 이유로 모멸적인 비판을 쏟아붓는 사례도 있다. 유은혜 국정기획위 사회분과 전문위원은 지난달 30일 문화재청 업무보고에서 “문화재청이 너무 청와대나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침묵하고 있었던 사업이 여러 개 있었던 것 아닌가”라며 질타했다.

국정기획위가 문 대통령 공약에 맞춰 무리하게 업무보고를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공약에 대해 ‘시간을 두고 보겠다’고 보고했더니 ‘당장 검토 결과를 가져오라’는 답변이 나왔다”고 털어놨다. 공무원들을 하급자 다루듯이 취급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한 부처 관계자는 “세종시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당일 예정에도 없이 갑자기 서울 국정기획위 사무실로 보고하러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몇 층 몇 호로 가야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아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자문위원으로부터 ‘공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거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국정기획위의 행태는 출범 당시 김 위원장의 발언을 뒤집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2일 첫 국정기획위 전체회의에서 자문위원들에게 “완장 찬 점령군으로 비쳐서는 공직사회의 적극적 협조를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