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당인 자유한국당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대통령 탄핵과 대선 참패로 지지 기반이 무너지고 지지율은 10% 안팎까지 떨어졌다. 패배주의에 무사안일주의가 더해지면서 무기력증에 빠졌다. 보수의 가치는 희미해졌다. 내년 지방선거는 물론 5년 뒤 정권교체에 대한 비관론이 팽배하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총체적 위기다.

◆무너진 지지 기반

TK서 바른정당에 뒤진 한국당…'출구'가 안보인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이번은 아니다. 진보는 단합했고 보수는 부패한 이미지를 덮어쓴 데다 분열했다. 대선 참패는 그 결과다. 지지 기반은 송두리째 붕괴됐다. 지역 기반도, 세대 기반도 다 무너졌다. 그간 강세를 보였던 50대에서도 졌다. 전통적인 2040(진보진영) 대 5060(보수진영) 대결 구도는 2050(진보) 대 60대 이상(보수)으로 바뀌었다. 이대로라면 세대 전쟁은 필패다. 지역적으로는 대구·경북(TK)을 제외하곤 거의 무너졌다. 2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TK 지지율이 18%에 그쳐 바른정당(22%)에도 밀렸다. 부산·울산·경남은 더 이상 한국당의 텃밭이 아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아직 지지 기반이 남아 있는 것 아니냐’는 막연한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위기감 없는 여당 같은 야당

“반성도 없고 책임도 안 지는 무능한 보수. 그게 바로 지금의 한국당 현주소”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1일과 2일 열린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자성론이 나왔다. 참석자들이 후회와 반성을 쏟아냈다. 바닥으로 떨어진 지지율을 회복하려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는’ 수준의 변혁이 요구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대선 참패 3주 만에 나온 반성문이다. 그만큼 위기감이 떨어진다는 방증이다.

의원 상당수는 “할 일도 없고 의욕도 없다”며 아예 지역구에서 산다고 한다.

청문회 정국에서 ‘전투력 부재’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와 이정현 의원(정치·사회분야), 이한구 전 의원(경제분야) 같은 ‘저격수’가 안 보인다. 한 영남 중진의원은 “과거엔 의원들이 저격수를 응원했지만 지금은 냉소적이어서 아무도 그런 역할을 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당 의원 107명의 70% 정도인 초·재선 의원(초선 43명, 재선 30명)의 쇄신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위기국면에서 당 쇄신 투쟁을 벌였던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같은 쇄신파가 없다 보니 존재감이 없다. 한 중진의원은 “당 위기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며 “과거 같으면 소장파가 당을 서너 번은 뒤집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흔들리는 보수 가치

보수의 가치도 희미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국면에서 대통령 특보가 “우리 스스로가 북한을 제재할 필요가 없다”며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 등의 필요성을 언급했는데도 한국당에선 공식 논평조차 나오지 않았다. 대북정책은 보수와 진보가 10년 넘게 대립해온 이념적 가치의 문제다. 원유철, 정진석 의원은 “법치주의와 자유시장경제, 한·미 동맹, ‘작은 정부’ 등은 양보할 수 없는 보수의 가치”라며 “이를 토대로 새로운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엔 안희정 충남지사와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등 차기 주자가 많은 반면 한국당엔 눈에띄는 차기주자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당은 그간 사람을 키우지 않았다. 차기 대선은커녕 당장 내년 지방선거에 대한 비관론이 팽배하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민주당 김부겸 의원과 김영춘 의원이 각각 대구시장과 부산시장으로 나서면 이길 수 있겠느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재창 정치선임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