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서 예를 지켜 식사하는 발우공양.
사찰에서 예를 지켜 식사하는 발우공양.
대부분의 종교는 음식물을 받을 때 일정한 기도를 한다. 심지어 남자들은 군대에 가서도 기도와 비슷한 감사문을 외우며, 학교 급식에서도 흔하게 “감사히 먹겠다”는 외침을 나눈다. 음식물이 그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깊은 상징을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징을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는 것이 불교의 오관게(五觀偈)다. 다섯 가지 게송이라는 뜻이다. 공양할 때 승려와 신자들이 암송한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물론 불교의 예절이지만, 종교를 막론하고 새겨볼 내용이다. 먹는 음식에 대한 감사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야말로 인간사의 진중한 핵심이 아닌가 싶다.

음식에도 수행의 마음을 담는다
사찰 음식 전문가 선재스님.
사찰 음식 전문가 선재스님.
필자는 3년 동안 열 명이 넘는 스님과 사찰 음식 기행을 다녔다. 이른바 유명한 ‘스타’ 스님들도 많았다. 한국 사찰음식을 대중화하는 선두에 섰던 선재스님, 사찰음식의 대가 우관스님, 최근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인 미국의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셰프스 테이블’ 31화에 소개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은 정관스님, 미쉐린 별을 받은 사찰음식점 ‘발우공양’을 지휘했던 대안스님…. 스님마다 흥미로운 솜씨와 맛을 보여줬다.

 소박하면서도 깔끔한 사찰 음식.
소박하면서도 깔끔한 사찰 음식.
사찰음식에 대한 최근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아예 ‘사찰음식 배달’ 서비스를 하는 곳도 있다. 좋게 말해서 사찰음식이 종교성을 탈색하고 일상의 음식으로 들어왔다는 얘기다. 우리 음식이 망가져 간다는 불안감에 사찰음식이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다. 먹는 것이 우리 정신과 몸을 이루고, 그것에 따라 생로병사가 일어난다는 보편적인 섭생관에 주목하고부터다. 특히 육식과 인스턴트 음식, 자극적인 폭식이 건강을 망친다는 깨달음이 사찰음식의 인기를 높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서양 사람들의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도가 급증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국내 상당수 사찰은 외국인 전용 또는 참가가 가능한 템플 스테이를 열어놓고 있는데, 신비로운 한국 선 사상을 배우는 것은 물론이고 사찰음식을 알기 위해서 온다고 한다.

사찰음식이 좋은 이유는 우선 정신을 든다. 수행하는 이들의 음식이니, 음식에도 수행의 마음을 담는다는 것이다. 꼭 불교와 연관 짓지 않아도 음식이 마음을 가다듬는 경건함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또 사찰음식은 제철음식이다. 요새 뜨는 제철, 로컬푸드가 바로 절밥의 핵심이다. 절에는 울력이라고 하는 직접 농사짓는 관행이 있었다. 자기 입에 들어가는 것은 자기가 채취하고 농사짓는다는 정신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제철음식일 수밖에 없었다. 봄에는 냉이와 쑥에 나물, 여름에는 보리와 풋것을 먹는다. 먹을 것이 귀하다 보니 저장하는 법이 발달했다. 발효식품이 세계적으로 뜨고 있는데, 절에 가서 항아리를 뒤지면 아마 모든 답이 나온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온갖 것을 다 절이고 저장한다. 이를테면 두부를 된장에 절이고, 온갖 싹과 풋것이 간장에 들어 있다.

스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국수
사찰 음식 대가 일운스님.(불영사 주지)
사찰 음식 대가 일운스님.(불영사 주지)
원래 사찰음식이란 없었다고 한다. 절에서 조리하지 않고 먹을 음식은 민가에서 탁발을 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이후 음식을 만들고 그것을 저장하는 등의 행위조차 ‘물적 소유’라고 보고, 멀리한 까닭이다. 점차 탁발은 줄고(현재 한국 조계종은 탁발을 하지 않는다) 조리해서 먹되, 여러 규율이 생겼다. 예를 들면 먹는 양을 최소로 하고, 가능한 한 직접 요리 재료를 기르고, 먹는 시간을 제한하는 등의 계율이 생겼다. 현재의 사찰음식은 우리가 흔히 ‘절밥’이라고 부르는 형태다. 여기에 병을 고치는 약선이나 극도의 제한된 칼로리와 조리법(생식)을 지켜서 몸을 단련하는 방법도 포함한다. 왕년의 성철스님이 솔가지와 낱알 몇 개를 생식하면서 수행했다는 이야기도 이런 예에 든다. 어쨌든 우리가 아는 사찰음식은 절에서 전수돼온 오래된 양식의 음식이라고 보면 된다.

사찰 음식은 독특한 양념으로 맛을 낸다.
사찰 음식은 독특한 양념으로 맛을 낸다.
원래 절밥은 칼로리가 낮고 일체의 육류를 쓰지 않아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건강이 불균형하다는 연구 논문이 나올 정도였다. 역시 단백질과 고기에서 주로 섭취하는 영양소(철분 등)가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유 때문에 절밥 즉 사찰음식이 인기 있다. 지금 우리는 너무 넘치는 영양과 맛으로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자각에서 나온 인기다.

스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는 국수다. 그래서 별명이 승소(僧笑)다. ‘중을 웃게 만든다’는 뜻이다. 맛있는 별식이기도 하지만, 국수를 먹을 때는 대개 발우공양의 예를 갖추지 않는 편안함이 있다. 발우공양이란 불가에서 공양할 때 지키는 엄격한 예식이다. 텔레비전에서 더러 보았을 텐데, 짠지 한 쪽을 남겨 그릇을 설거지하듯 완전히 닦아내며 먼지보다 적은 음식물도 그릇에 남기는 법이 없어야 한다. 먹는 일조차 ‘공양’이라고 해서 도를 닦는 일부로 보는 불가의 관습을 적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수에 하나 더 보탤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경북 청도에는 유명한 절 운문사가 있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이 먹을 수 있도록 절 앞의 한 중국집에서 ‘스님 짜장면’을 만들었다. 물론 고기를 넣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화제가 돼 일반인들도 찾아온다. 또 하나는 스님도 세대교체가 되고 신세대가 많다. 사찰음식 전문가인 동원스님과 토마토를 따러 간 적이 있는데, 스님이 잘 익은 토마토로 하는 요리 중에 스파게티가 있다는 것이었다. 젊은 스님들이 좋아해 여름이 되면 푹 익은 토마토로 스파게티를 만든다는 말이었다. 사찰음식이라면 고리타분한 옛 음식이라는 고정관념을 바꿀 필요가 있는 일화였다.

독특한 향의 양념으로 미각 자극

사찰음식 한상차림.
사찰음식 한상차림.
흥미로운 건 원래 승려도 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다만 정화된 고기라는 단서가 있었다. 지금처럼 채식이 된 것은 기원전 1세기 전후에 중국에서 대승불교가 일어날 때라고 한다. 그때 경전에서 오신채와 고기를 금했다. 오신채란 마늘과 파 부추 달래 흥거 등을 이른다. 자극적인 양념이다. 이 때문에 사찰음식이 역설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자극으로부터의 도피, 그것이 지금 우리 식생활에서 하나의 화두가 된 까닭이다. 절밥 맛이 특이한 것은 이런 오신채를 쓰지 않고 대신 다른 양념을 조달하기 때문이다. 다시마와 버섯, 제피, 방아잎 등의 독특한 향이 나는 양념을 쓴다. 이런 이색적인 맛이 절밥이 우리 미각을 자극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종종 고급(?) 사찰음식을 먹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코스로 나오는 요리도 있다. 이는 스님의 일상 음식은 아니다. 원래 절에는 여러 가지 제사가 많다. 팔관회나 연등회 같은 큰 행사도 있다. 부처님에게 바치는 제사인 셈인데, 이때 다과와 여러 가지 유밀과 두부 튀김요리 등이 올라간다. 이런 요리가 사찰음식에 더러 나오면서 사람들의 오해가 빚어지기도 했다. 외국인이 우리 잔치 음식을 먹고 한국인이 매일 이런 음식을 먹는다고 착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여기서 잠깐 퀴즈 하나. 절밥이 맛있는 이유는? 답은 절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다. 절까지 걸어 올라가다 보면 당연히 시장하고, 절밥이 맛있게 마련이라는 스님 사이의 농담이다. 필자가 먹은 가장 맛없는 절밥의 기억도 있다. 1993년 11월의 해인사였다. 바로 한국 불교사의 가장 큰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성철스님 다비식을 보러 갔을 때였다. 전국에서 엄청난 숫자의 승려는 물론 신자, 비신자, 심지어 가톨릭 수녀님들도 몰려왔다. 다비식장에는 그야말로 발을 디딜 수 없었고, 이미 다비식 며칠 전부터 취재진과 추모객이 진을 쳤다.

연잎우엉잡채
연잎우엉잡채
해인사는 선방과 교육기관이 있어 원래 대형 식당이 있다. 거기서 만드는 음식은 이른바 군대밥과 비슷하다. 게다가 오신채 양념을 쓰지 않으니 맛이 있을 리가 없다. 군대밥 같은 식판에 밥을 담아주는데, 정말 논산훈련소 밥보다 맛이 없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절에서는 오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막론하고 한 끼의 공양을 나누는 관습이 있어서다. 또 절이 대개 깊은 산중에 있으니 밥을 먹으러 갈 데도 없다. 이런 사정이 절밥의 독자성, 고유성을 만들어 온 셈이다.

역설이지만, 동원스님(서천 천공사 주지)의 말을 기억해본다. “잘 먹자고 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는 것이 바로 절밥입니다.” 나쁜 것, 좋은 것 가리지 않고 너무 지나치게 먹어서 문제인 현대인에게 가장 엄중한 경구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