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설 등 취약업종 기업들이 회사채 시장 문을 다시 두드리고 있다. 지난 수년간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보유자산을 팔거나 3개월짜리 기업어음(CP)을 발행하는 식으로 긴급 자금을 조달했지만, 최근 좋아진 실적을 바탕으로 장기 투자자 모집에 나선 것이다. 실적을 통해 ‘빚 갚을 능력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투자자들도 앞다퉈 취약 업종 회사채를 사들이고 있다. 특히 신용등급 대비 금리 매력이 큰 건설업은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역대 최고 수요예측 경쟁률을 갈아치우고 있다.
조선·건설 등 취약업종도 회사채 시장 '노크'
◆현대·두산重 발행 재개

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이르면 이달 중 유동화기업어음(ABCP) 발행과 자산유동화대출(ABL)을 통해 4000억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앞으로 벌어들일 군함 5척 건조대금(장래매출채권)을 담보로 현금을 앞당겨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채무상환 만기는 3년6개월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런 내용을 담은 투자설명서(IM)를 최근 기관투자가들에 보냈다.

세계 1위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이 장기(3년 이상) 자금 조달에 나선 것은 2015년 7월 공모채를 발행한 이후 처음이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담당 임원은 “최근 현대중공업이 잇따라 수주에 성공하면서 회사채 투자자 확보에도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며 “조만간 만기가 더 긴 채권 발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그동안 몇몇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단기 사모사채나 CP를 발행하는 식으로 긴급 자금을 조달했다.

건설업 의존도가 큰 두산중공업은 2012년 11월 이후 4년6개월 만에 회사채 발행을 재개했다. 지난달 연 3.7% 금리로 회사채 700억원어치를 사모 발행한 데 이어 이달에도 1년 만기 회사채 1000억원어치를 사모 발행키로 했다. 유동성 부족에 대한 걱정이 잦아들면서 채권을 사겠다는 투자자가 늘어난 결과다.

지난해 2155억원의 순손실을 낸 두산중공업은 올 1분기에 374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건설 관련 자회사들의 수익성이 개선된 덕분이다. 두산중공업과 건설 관련 계열사들은 그동안 회사채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회사 측에 불리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활용해 자금을 조달했다.

IB업계 관계자는 “취약업종 기업들이 최근 몇 년간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해 놓은 상태에서 이익 규모가 늘기 시작하자 투자자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은 38조3000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 30조2000억원보다 26% 증가했다.

◆역대 최고 경쟁률

장기간 기관투자가들로부터 외면받았던 건설업 회사채는 2012년 수요예측 제도 시행 이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국내 시공능력 5위 건설사인 대림산업이 지난 2일 발행한 회사채 수요예측에는 모집금액의 다섯 배가 넘는 ‘사자’ 수요가 몰렸다. 1000억원 모집에 5370억원의 매수 주문이 들어왔다. 건설업종 사상 가장 높은 수요예측 경쟁률이다. 종전 최고 경쟁률은 작년 10월 발행한 현대산업개발(3.8 대 1)이었다.

대림산업은 흥행 성공에 힘입어 발행 금리를 희망 금리보다 0.55%포인트나 낮은 연 2.94%(3년물 기준)로 확정했다. 발행금액도 2000억원으로 늘렸다. 최한승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주택경기가 좋아지면서 건설부문 실적이 회복되고 있다”며 “주택부문이 앞으로도 건설사들의 영업이익 증가에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2014년까지만 해도 모집금액을 채우지 못했던 한화그룹 계열사 회사채도 흥행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화학부문 실적이 개선된 동시에 태양광부문에 대한 우려가 줄어들어서다. 덕분에 지주회사인 한화가 오는 7일 발행 예정인 1000억원 규모 회사채에는 다섯 배 가까운 수요가 몰렸고, 한화는 발행금리를 희망 수준보다 0.6%포인트 낮게 잡을 수 있었다. 한화케미칼은 지난 2월 화학부문 실적 개선에 힘입어 수요예측 역사상 최고 경쟁률(12.7 대 1)을 기록하며 당초 예상보다 0.62%포인트 낮은 연 2.52%에 3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태호/김진성/서기열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