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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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 제노바 귀족 가문의 시모네타 카타네오는 피렌체에서 젊고 촉망받는 여러 정치인, 시인, 화가, 철학자 등 수많은 남성을 매혹시켰다. ‘사교계의 여왕’이었다. 미모뿐만 아니라 문학적 감각과 해박한 지식을 갖춘 그녀는 1453년 피렌체를 지배하던 강력한 메디치 가문의 측근이었던 마르코 베스푸치와 결혼한다. 당시 시모네타의 나이는 18세. 어느 날 사교 모임을 위해 메디치가의 저택을 찾은 시모네타는 그곳의 지원을 받으며 작업하고 있는 젊은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1444~1510)를 만난다. 시모네타를 보고 첫눈에 반한 보티첼리는 그녀에게 작품의 모델이 돼줄 것을 요청한다. 시모네타는 은근히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며 기꺼이 포즈를 취해준다. 불후의 명작 ‘비너스의 탄생’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보티첼리는 시모네타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의 현신으로 승화시켰다. 수줍은 미인을 해변으로 밀어 보내는 ‘바람의 신’ 제피로스, 데이지와 국화 무늬의 옷을 펼치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를 부속 장치로 활용해 극적 효과도 노렸다. 시모네타를 영원한 ‘미의 수원지’로 여겼던 보티첼리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보티첼리는 시모네타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의 현신으로 승화시켰다. 수줍은 미인을 해변으로 밀어 보내는 ‘바람의 신’ 제피로스, 데이지와 국화 무늬의 옷을 펼치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를 부속 장치로 활용해 극적 효과도 노렸다. 시모네타를 영원한 ‘미의 수원지’로 여겼던 보티첼리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