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최저임금 가파른 상승은 성장 해치고 일자리 파괴"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시간당 1만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올해 최저임금이 시간당 6470원인 것을 감안하면 3년 동안 매년 평균 15.7% 올리겠다는 것이다. 내수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과당 경쟁으로 생존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데 지출 비중이 높은 인건비마저 크게 오르면 경영 기반이 흔들린다”며 보완책 마련을 요구했다.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 아르바이트 인원이나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최저임금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한 나라는 뉴질랜드다. 뉴질랜드는 1894년 중재재판소를 설치하고, 이곳을 통해 근로자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최저임금)을 결정했다. 이후 호주(1907년) 캐나다(1918년) 미국(1938년)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은 1986년 12월 최저임금법을 제정하고 1988년부터 시행 중이다.
[뉴스의 맥] "최저임금 가파른 상승은 성장 해치고 일자리 파괴"
최저임금에서 한발 더 나아간 개념으로 ‘생활임금’이 있다. 근로자가 최소한의 인간적·문화적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말한다. 1994년 미국 볼티모어시(市)가 처음 도입했다. 서울 자치구들은 기간제 근로자 임금(2016년 기준 시간당 6934~7600원) 산정 때 이를 활용하고 있다.

한국의 명목(절대) 최저임금은 세계 주요 국가 가운데 중위권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나라(2017년 5월 기준)는 독일로 시간당 11.25유로(약 1만4174원)다. 프랑스가 시간당 9.67유로(약 1만2178원)며 영국(6.7파운드·약 9673원) 미국(7.25달러·약 8141원) 일본(798엔·약 8034원)도 한국(6470원)보다 높다.

‘실질 최저임금’은 OECD 8위

나라마다 최저임금 인정 범위가 달라 단순 비교하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한국은 최저임금으로 기본급과 고정수당만 인정한다. 프랑스는 상여금, 연월차 수당, 연말 보너스, 휴가비 등도 포함시킨다.

지역·산업별로 차등 적용하는 나라도 많다. 미국 연방정부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지만 대기업이 많은 뉴욕·매사추세츠주(州) 등은 11달러, 농촌지역인 조지아·와이오밍주는 5.15달러다. 캐나다도 미국과 비슷하다. 일본과 호주는 업종과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프랑스 등 많은 유럽 국가는 청소년에겐 최저임금의 50~90%를 적용한다.

최저임금위원회의 ‘2016년 노동·경제지표 분석’에 따르면 한국 1인당 국민소득 대비 최저임금은 OECD 국가(조사대상 21개국) 중 8위에 해당한다. ‘실질 최저임금’이 독일 프랑스 영국 등보다는 낮지만 일본 캐나다 미국 스페인 등보다는 높다.

최저임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근로자 비율을 ‘최저임금 영향률’이라고 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최저임금 영향률은 작년 기준으로 18.2%(342만 명)로 추정됐다. 이들의 기본급과 초과근무 수당, 휴일근무 수당 등이 최저임금 인상률에 따라 결정된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계열 내 다른 사업장 및 사내 상위계층 임금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준다. 하지만 대다수 영세기업에선 1년차 신참과 7~8년차 숙련 근로자 임금이 거의 비슷한 경우도 적지 않다. 2000년대 들어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영향률 세계 최고 수준

2000년 시급(時給) 1865원에서 올해 6470원으로 17년간 3.47배나 됐다. 2001년 최저임금 영향률이 2.1%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18.2%로 상승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총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의 작년 최저임금 영향률은 일본 7.3%, 캐나다 6.7%, 네덜란드 6.4%, 영국 5.2%, 미국 3.9% 등이다.

문재인 정부 계획대로 시급이 2020년 1만원으로 인상되면 최저임금 영향률이 40%를 넘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기업들도 단기간에 큰 부담을 지게 된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추산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액’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은 2020년부터 매년 81조5000억원의 인건비 부담액이 늘어난다.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근로자 임금이 현재 월평균 161만9900원에서 2020년 250만3700원으로 오르기 때문이다.

임금을 올려 근로자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고, 근로자들은 늘어난 소득만큼 소비를 확대하고, 소비 증가가 기업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고리를 형성하겠다는 것이 ‘소득 주도 성장론’이다. 하지만 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임금 상승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아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최저임금을 받거나 그 이하를 받는 근로자 가운데 어떤 근로자는 최저임금 인상 혜택을 보겠지만, 더 많은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최저임금의 역설’이다.

최저임금은 미숙련 근로자인 청년과 주부, 노인 등의 고용에 가장 큰 악영향을 미친다고 그레고리 맨큐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적했다. 맨큐 교수는 최저임금이 10% 상승하면 경제성장률이 소폭 떨어지고 청년 고용도 1~3% 하락한다는 실증 결과가 학계에 보고돼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 등 최저임금이 높은 지역일수록 제과점 주유소 패스트푸드점 커피숍 등에서 사람을 대체하는 로봇을 활용하거나 주문받는 기계를 설치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국내에서도 이와 결과가 비슷한 연구 보고서(2016년 10월 한국경제연구원 KERI Brief 등)가 나와 있다. 주 피해자는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생활안정을 지원하겠다는 영세 중소기업·자영업자 소속 근로자들이다. 경총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최저임금 근로자의 98.2%가 중소기업 근로자다. 이 가운데 86.6%는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서 일한다. 이들 사업장에는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근로자도 있다.

일자리 최대 피해자는 취약계층

한국은행이 작년 6월 발표한 추정치에 따르면 최저임금 미달 근로자 비중은 2012년 10.7%(186만 명)에서 작년 16.3%(313만 명)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올해엔 20%를 웃돌 것이란 전망도 있다. 전체 근로자의 20%선이 최저임금보다 적게 받는다는 것은 최저임금 수준이 현실과 동떨어지게 높다는 방증이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는 정책은 자칫 중소기업 생존 기반을 흔들 수 있다”며 “그 피해가 최저임금을 겨우 받거나 이에 미달하는 근로자의 일자리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정희 한국중소기업학회장(중앙대 경제학부 교수)은 “사회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주요 선진국처럼 지역과 산업별 상황에 맞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