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스피커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아마존의 '에코'(왼쪽)와 구글의 '구글홈'. / 사진=각사 제공
AI 스피커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아마존의 '에코'(왼쪽)와 구글의 '구글홈'. / 사진=각사 제공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가 스피커에 꽂혔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업체 가리지 않고 스피커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난데없는 스피커 싸움의 배경에는 인공지능(AI) 플랫폼 경쟁이 있다.

스피커는 각 사가 개발한 '인공 두뇌', 즉 AI 서비스를 구동시키는 몸체 역할이다. 이용자는 스피커를 통해 AI에 말을 걸어 검색, 주문, 가전 조작, 음악 감상 등을 할 수 있다. AI는 머신러닝(기계학습)을 통해 자주 쓰는 기능이나 이용자 취향을 익히기 때문에 개인 맞춤형 서비스도 가능하다.

비슷해 보이는 AI 스피커들이지만 내놓는 회사마다 전략에는 차이가 있다. 선두주자인 아마존과 구글의 스피커는 글로벌 가전 제품을 아우르는 '스마트홈 허브'의 성격이 강하다. 애플은 '음악'에 방점을 찍었다. 국내 이동통신사와 인터넷 기업들은 한국어 인식을 무기로 국내 서비스와 AI 스피커 연동에 집중하고 있다.

◆아마존·구글, 스마트홈 공략…애플은 음악 집중

일찌감치 AI 스피커 사업을 시작한 아마존과 구글은 성공적으로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이용량과 학습량이 많을 수록 서비스 품질이 높아지는 AI 스피커 특성상 후발주자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아마존이 2014년 11월 선보인 '에코'는 최근 누적 판매량이 1000만대를 돌파했다. 에코에는 AI 서비스 '알렉사'가 탑재됐다. 알렉사와 에코는 당초 전자상거래를 도와주는 용도로 개발됐으나 현재는 스마트홈의 허브로서 자리잡았다. 가전, 자동차, 스마트폰 등 다양한 업계에서 알렉사를 적용하면서 에코와 연동되는 기기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아마존은 에코를 차세대 쇼핑 플랫폼으로 만드는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에코에 디스플레이와 카메라가 탑재된 신제품 '에코룩'은 패션 쇼핑에 특화된 모델이다..

지난해 10월 출시된 '구글홈'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구글 역시 글로벌 가전 제조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구글홈의 활용처를 넓히고 있다. 구글홈에 탑재된 AI 서비스 '구글 어시스턴트'는 LG전자, GE 등 가전업체 70여곳의 기기와 연동된다.

애플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애플은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열린 세계개발자대회(WWDC)에서 AI 스피커 '홈팟'을 공개했다.

애플은 홈팟을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인 '애플뮤직'과 AI 서비스 '시리'를 합친 '음악연구가(musicologist)'라고 소개했다. 다른 제품처럼 날씨나 교통상황을 알려주고 가전을 조작할 수도 있지만, 음악 서비스로 차별화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애플뮤직과 연동되는 홈팟은 전세계 4000만곡 이상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스피커 본연의 기능에도 공을 들였다. 홈팟은 7개의 트위터 스피커, 전면 4인치 서브 우퍼를 탑재했다.
애플의 AI 스피커 '홈팟'. / 사진=애플 홈페이지
애플의 AI 스피커 '홈팟'. / 사진=애플 홈페이지
◆한국어 되는 토종 AI 스피커, 선점 경쟁 가열

국내 AI 스피커 시장에서는 SK텔레콤을 필두로 이동통신 업계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한국어를 지원하는 AI 스피커는 SK텔레콤의 '누구'와 KT의 '기가지니'밖에 없다보니 소비자의 선택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 출시된 누구는 시장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누적 판매대 수는 지난달 기준 10만대를 넘어섰다.

SK텔레콤의 AI 스피커 '누구'. / 사진=SK텔레콤 제공
SK텔레콤의 AI 스피커 '누구'. / 사진=SK텔레콤 제공
SK텔레콤은 글로벌 기업 제품이 국내에 상륙하기 전 시장을 확실하게 선점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자사 및 계열사 서비스를 누구와 연결하는 동시에 가전, 건설, 콘텐츠, 외식프랜차이즈 업계와 전방위적인 협업에 나서고 있다.

현재 누구는 내비게이션 'T맵', 인터넷TV(IPTV) 'Btv', 오픈마켓 '11번가'와 연동돼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배달음식 주문도 가능하며, 60여개 가전 업체의 70여개 스마트홈 기기와도 연동된다. 누구가 기본 탑재되는 아파트나 오피스텔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 인터넷 기업들도 AI 스피커를 새 성장동력으로 삼았다. 네이버는 자회사 라인과 함께 올 여름 AI 스피커 '웨이브'를 선보일 예정이다. 카카오 역시 3분기 중 AI 스피커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기존 자사 서비스들을 강화하고 시너지를 내는 방향으로 스피커에 접근하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의 무대를 PC나 모바일을 넘어 생활 전반으로 넓힌다는 전략이다.

네이버는 웨이브에 탑재될 AI 플랫폼 '클로바'를 고도화하는 중이다. 현재 전용 앱(응용프로그램) '네이버-클로바'를 통해 베타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검색, 지도, 쇼핑 등 네이버의 기존 주력 서비스는 AI 스피커를 통해 한층 편리한 이용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 역시 운영 중인 다양한 플랫폼과 서비스들을 AI 스피커에 연동시킬 가능성이 높다. 업계는 카카오가 국내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지적재산권(IP)도 AI 스피커 사업에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희진 한경닷컴 기자 hotimp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