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진보시민단체는 사실상 정책과 인사를 주도하며 ‘장외의 정부’ 역할을 하고 있다. 청와대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입성한 인사 중 시민단체 출신이 38%에 달한다. 현장의 목소리가 국정에 적극 반영되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자칫 시민단체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 ‘책임지지 않는 권력’으로 변질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일부 목소리 큰 시민단체에 국정이 휘둘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2년간 3건 반영된 시민단체 법안…여당 '공동입법'으로 12건 통과 기대
◆정부정책 최대 생산기지 진보단체

민변과 참여연대가 제안한 총 150개 정책과제 중 상당수는 힘을 얻고 추진되고 있다. 지난 6일 국정기획위는 미래창조과학부에 “주말까지 통신비 인하 방안을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그전까지 업무보고를 중단하겠다는 강공을 뒀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자 참여연대의 제안정책인 ‘가계 통신비 인하’와 맞닿아 있다.

민정수석은 비검찰 출신이 맡아야 한다는 민변의 주문은 학자 출신인 조국 민정수석으로 현실화했다. 참여연대가 주장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 폐기’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를 한 달간 셧다운하라”고 지시했다.

검찰·국가정보원의 개혁,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 최저임금 1만원 상향, 전월세상한제 등의 정책제안도 이미 정부가 확인해 추진하고 있는 사안이다. 대부분은 문 대통령의 공약과도 겹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공약에는 없지만 진보단체가 요구하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종합부동산세 강화 등도 앞으로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가운데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철회와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화 등 외교와 관련된 민감한 사항도 포함돼 있다. 한 대학교수는 “정책은 법과 원칙에 따라 추진돼야지 일부 시민단체의 민원에 좌지우지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진보단체의 위상은 입법 과정에서도 한층 제고될 전망이다. 참여연대와 경실련은 1994년(참여연대 설립)부터 지금까지 총 662건의 입법의견서 청원서 법률안 등을 발표·발의했다. 지금까지 법안이 통과되거나 반영된 것은 3건에 불과하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진 만큼 향후 이 법안들이 행정부와 입법부의 공조로 수월하게 국회를 통과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 법안 12건 대부분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공동발의했기 때문이다.

◆편향성 우려도 커져

새 정부의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 주요 보직에도 시민단체 인사가 대거 입성했다. 현재까지 발표된 청와대 인사 40명 가운데 14명이 시민단체를 거쳤다.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위 역시 전체 34명 가운데 14명이 시민단체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 첫 인사 때 청와대와 내각을 고시(60.4%) 학자(15.4%) 출신이 차지하고 시민단체는 한 명도 없었던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시민단체를 거쳐간 인사는 장하성 정책실장(참여연대), 조국 민정수석(참여연대), 하승창 사회혁신수석(경실련), 조현옥 인사수석(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등이 대표적이다. 참여연대 등 큰 조직 외에 한국여성민우회(유송화 제2부속비서관),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신동호 연설비서관), 녹색연합(김혜애 기후환경비서관), 여성단체연합(김금옥 시민사회비서관) 등 다양한 단체에서도 인사를 배출했다.

청와대 주요 보직이 특정 성향 시민단체 인사들로 채워지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권력을 감시하는 시민단체가 지나치게 권력과 가까워지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학자나 언론이 정치권으로 넘어갈 때 비판 기능을 잃은 ‘폴리페서’나 ‘폴리저널리스트’라고 비판하듯 시민단체 역시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이현진/박진우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