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알파고 세상'이 가져올 실익을 취하려면
인공지능(AI) 알파고가 홀연히 바둑계를 떠났다. 작년 봄 이세돌이 알파고에 진 것은 큰 충격이었지만 얼마 전 커제의 완패는 어느덧 당연하게 느껴졌다. 커제는 알파고가 60연승한 기보를 닳도록 연구했다고 한다. 그것이 ‘인간 바둑계 최고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였다. 그러나 상대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 기계끼리 학습하는 단계의 ‘머신러닝’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머신러닝은 빅데이터를 데이터 사이언스와 인공지능을 통해 분석해 최적화된 답을 찾는 활동이다. ‘어떻게 배우느냐’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인간에게 모의고사 정답과 해설을 배우는 ‘지도학습’, 정답 없는 모의고사를 기계 혼자 공부하는 ‘비지도학습’, 기존 문제를 바탕으로 기계 스스로 문제까지 만들어 학습하는 ‘강화학습’이다. 1년 전 알파고는 ‘지도학습’으로 기보 16만 개를 익힌 뒤 대국에 나섰지만, 돌아온 알파고는 인간이 입력해주는 데이터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의 ‘강화학습’으로 천하무적이 돼 나타났다.

성큼 다가온 머신러닝의 시대에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이미 이를 활용해 경쟁력과 성과를 높이고 있다. 아마존의 개인정보 분석 및 추천 기능은 매출의 35%로 이어진다. 우버는 실시간 교통상황과 주행시간을 분석해 ‘가변적 가격 책정(dynamic pricing)’을 한다. 월마트는 시간당 2.5페타바이트(250만 기가바이트)의 엄청난 고객 정보를 활용해 재고를 관리한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으로 연간 2조원 규모의 이상거래를 예방한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아직 전사적 차원에서 머신러닝을 규모 있게 추진하는 곳이 없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우선 해결하고자 하는 비즈니스 이슈를 잘 정해야 한다. 머신러닝은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고객 정보를 분석해 인사이트를 찾고 미래를 예측한다 하더라도 생산성 개선, 매출 증대, 고객 유치 등 무엇을 위한 분석인지 모르면 소용이 없다. 분석이 어떤 구체적 사업활동으로 이어지며 결과적으로 어떤 구체적 성과로 실현될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통역사’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통역사는 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비즈니스 이슈를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에게 설명하고 기술적 솔루션으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수술은 잘 됐지만 환자가 죽었다’는 얘기가 안 나오게 하려면 비즈니스와 기술의 연결이 매우 중요하다.

다음으로는 이에 맞춰 정보를 모아야 한다. 머신러닝의 기본은 정보다. 어떤 정보를 어떤 형태로 얼마나 자주 수집하고 관리해야 하는가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또 충분한 양의 정보를 확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가치 있는 정보가 기업 내에 축적돼 있더라도 디지털화돼 있지 않아 활용되기 어려운 사례도 많다.

마지막으로 리더십과 조직이 뒷받침돼야 한다. 머신러닝의 도입을 포함한 디지털 혁신은 결국 ‘변화관리’다. 최고위층의 신념과 드라이브가 없으면 실행이 불가능하다. 기술적인 주제이니 실무진의 자발적 활동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오판이다. 최고경영자(CEO) 주도로 끌어가야 큰 비즈니스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조직은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애자일(agile·기민한) 조직’이어야 한다. 실험적이고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실패에서 성공을 이끌어내는 프로세스, 역량, 문화가 필요하다.

알파고와 최종전에서 패배한 날 ‘인간 대표’ 커제는 즐기지도 않는 술을 9시간이나 마셨다고 한다. 인간은 인간의 방식을 기계에 가르치고 인간이 원하는 일을 시키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기계가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인간이 예측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선 매우 불편해하고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나 기계의 세상이 가져올 실익을 취하려면 그 불편함과 혼란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계를 초월한 기계의 학습과 행동에 인간이 적응하고 멋지게 공생해야 하는 자못 낯선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최원식 <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