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아베식 일정 공개와 처칠의 낮잠
오전 7시10분 도쿄 도미가야 사저 출발. 23분 관저 도착. 25분 하기우다 관방 부장관 면담. 8시22분 노가미 관방 부장관 면담. 55분 의회 출석. 9시 중의원 결산행정 감사위원회….

일본 주요 신문에선 매일 똑같은 위치에 전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일정이 분 단위로 정리돼 공개된다. 총리가 민간 식당에서 식사할 경우엔 식당이름과 메뉴명까지 적시된다. 총리 관저 홈페이지에선 총리의 당일 주요 일정은 물론 주요 기자회견 동영상과 연설문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간표를 자세히 보면 ‘사각지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베 총리는 꽤나 투명한 ‘유리병’ 속에서 국정을 운영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처럼 공개된 일정을 바탕으로 총리가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의 통계를 낸 뒤 ‘실세’가 누구인지 유추하는 기사도 등장하곤 한다. 아베 총리가 집권 초인 2013~2014년엔 5대 일간지, 통신사, 방송 관계자와 식사를 50회 했지만 올 들어선 요미우리신문 주필, 교도통신 사장과 회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일본이지만 모든 정보가 속시원히 공개되고 있다는 목소리는 듣기 어렵다. 국유지 헐값 매각에 아베 총리의 부인이 얽혀 있다는 모리토모학원 스캔들, 아베 총리의 친구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가케학원에 수의대 신설 편의를 봐줬다는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야당과 언론의 관련 문건 공개 요구가 거세다. 총리의 분 단위 일정 공개는 형식일 뿐이지 ‘정치’와 ‘행정’, ‘뒷거래’ 내용 공개까지 담보하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가 국무총리와 각 부처 장관 일정을 분 단위로 상세하게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이 ‘세월호 7시간’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 ‘악몽’이 있었기에 나온 조치일 게다.

그러나 일본의 예를 보더라도 중요한 것은 일정 공개라는 형식이 아니라 일의 내용이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재직 기간에 공공연히 “앉을 수 있을 때 서 있지 말고, 누울 수 있을 때 앉지 마라”고 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그가 워룸에서 가장 많이 한 행동은 낮잠이었지만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다.

김동욱 도쿄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