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고향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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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지난해 3월 영국 정부가 100mL당 5g 이상 설탕이 들어간 탄산음료에 L당 18~24펜스의 세금을 부과한다는 깜짝 발표가 있었다. 내년 4월부터 시행될 이 세금이 ‘설탕세(sugar tax)’다. ‘비만을 줄이고, 세금은 교육에 투자한다’는 목표가 명확해 저항이 비교적 적은 세금이라는 평가도 있다.
미국에서 설탕세를 처음 도입한 버클리시에서는 2015년 3월 시행 이래 당(糖) 성분이 많은 탄산음료 판매가 10%가량 줄고 생수와 차는 더 팔렸다는 통계도 있다. 세계적으로 ‘웰빙 붐’이 일기 전까지만 해도 설탕세는 이색적인 세금이었다.
이색 세금은 역사가 깊다. 고대 로마는 군비 조달을 위해 공중화장실의 오물을 퍼가는 섬유업자에게 ‘오줌세’를 부과했다. 영국에서는 부자에게 난로세를 부과했다가 징수가 여의치 않자 창문세로 바꾸기도 했다. 납세자들로 하여금 “세금을 내느니 차라리 어둡게 살겠다”며 주택 창문을 없애는 저항운동을 일으킨, ‘조세저항의 고전적인 사례’로 회자되는 세목이었다. 제정러시아 때 수염세가 신설되자 수염을 기르던 귀족들의 관습이 바로 변했다는 기록도 있다. 현대 에스토니아의 방귀세는 소가 내뿜는 메탄가스에 대한 징벌적 세금이다. 네덜란드에선 자동차에 대한 취득세나 보유세가 없는 대신 ‘주행부과세’로 운행에 비례해 세금을 매긴다.
목적이 그럴듯해도 세금에는 저항이 있게 마련이다. 시카고학파의 거장 밀턴 프리드먼이 “가장 덜 나쁜 세금이 토지보유세”라고 했던 것은 유독 보유세를 정당화했다기보다는 적은 세금이 경제발전에는 선(善)이라는 인식을 깔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위정자들은 세금의 목표만큼이나 이름도 중시한다.
정부가 추진한다는 ‘고향세’도 의도나 작명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재정이 부실한 지자체를 지정해 세금을 내는 방식으로 고향을 직접 돕게 하자는 것이다. 100만원 한도로 ‘고향기부금’을 내고 소득세에서 그만큼의 공제로 확정되면 납세자 부담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고향세가 지방재정 문제의 근본대책이 될 것인지다. 지속성, 실효성에 의문표가 붙는 데다 가뜩이나 여러 갈래인 지방재정을 더 복잡하게 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나마 국세로 거둬 배분해주는 재원만 줄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역연고주의를 세금으로 부추길 것이라는 예상도 기우는 아니다. 천편일률적인 지자체와 의회 등 방만한 지출구조를 둔 채로는 안 된다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나올 만하다. 차병원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내 고향은 서울 역삼동”이라는 ‘탈(脫)고향 도시인류’들이야 고향세에 관심이나 가질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미국에서 설탕세를 처음 도입한 버클리시에서는 2015년 3월 시행 이래 당(糖) 성분이 많은 탄산음료 판매가 10%가량 줄고 생수와 차는 더 팔렸다는 통계도 있다. 세계적으로 ‘웰빙 붐’이 일기 전까지만 해도 설탕세는 이색적인 세금이었다.
이색 세금은 역사가 깊다. 고대 로마는 군비 조달을 위해 공중화장실의 오물을 퍼가는 섬유업자에게 ‘오줌세’를 부과했다. 영국에서는 부자에게 난로세를 부과했다가 징수가 여의치 않자 창문세로 바꾸기도 했다. 납세자들로 하여금 “세금을 내느니 차라리 어둡게 살겠다”며 주택 창문을 없애는 저항운동을 일으킨, ‘조세저항의 고전적인 사례’로 회자되는 세목이었다. 제정러시아 때 수염세가 신설되자 수염을 기르던 귀족들의 관습이 바로 변했다는 기록도 있다. 현대 에스토니아의 방귀세는 소가 내뿜는 메탄가스에 대한 징벌적 세금이다. 네덜란드에선 자동차에 대한 취득세나 보유세가 없는 대신 ‘주행부과세’로 운행에 비례해 세금을 매긴다.
목적이 그럴듯해도 세금에는 저항이 있게 마련이다. 시카고학파의 거장 밀턴 프리드먼이 “가장 덜 나쁜 세금이 토지보유세”라고 했던 것은 유독 보유세를 정당화했다기보다는 적은 세금이 경제발전에는 선(善)이라는 인식을 깔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위정자들은 세금의 목표만큼이나 이름도 중시한다.
정부가 추진한다는 ‘고향세’도 의도나 작명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재정이 부실한 지자체를 지정해 세금을 내는 방식으로 고향을 직접 돕게 하자는 것이다. 100만원 한도로 ‘고향기부금’을 내고 소득세에서 그만큼의 공제로 확정되면 납세자 부담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고향세가 지방재정 문제의 근본대책이 될 것인지다. 지속성, 실효성에 의문표가 붙는 데다 가뜩이나 여러 갈래인 지방재정을 더 복잡하게 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나마 국세로 거둬 배분해주는 재원만 줄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역연고주의를 세금으로 부추길 것이라는 예상도 기우는 아니다. 천편일률적인 지자체와 의회 등 방만한 지출구조를 둔 채로는 안 된다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나올 만하다. 차병원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내 고향은 서울 역삼동”이라는 ‘탈(脫)고향 도시인류’들이야 고향세에 관심이나 가질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