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투자은행(IB)인 도이치뱅크가 정부의 통신 기본요금 폐지 추진과 관련해 “정부의 요금 규제가 통신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통신사들의 기업 가치를 훼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위적인 시장 가격 통제가 한국 기업들의 투자 매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게 해외 투자자들의 시각이다.

도이치뱅크는 지난 6일 발표한 마켓리서치에서 “한국의 규제기관(미래창조과학부)이 스스로 통신 요금을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밝히면서도 지속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며 “한국 통신사들은 모두 민간 기업이기 때문에 이 같은 정부의 요금 규제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통신업계 전체의 기업 가치는 아시아 지역 통신업계 대비 42%가량 저평가돼 있다”며 “이는 정부 규제에 영향을 크게 받는 시장 구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통신사들이 ‘초과 수익’을 거두고 있다는 업계 일각의 주장도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도이치뱅크는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의 올해 예상 자기자본이익률(ROE)은 8.5%로 도이치뱅크가 추정한 적정 수준(10%)에도 못 미친다”며 “월 1만1000원의 기본료가 폐지되면 한국 통신산업의 수익성은 붕괴되고 투자자들의 관심을 완전히 잃을 것”이라고 했다. 강제적인 요금 인하 정책의 부작용도 경고했다. 이 은행은 “기본료를 폐지하면 통신 사업자들은 단말기보조금과 유통수수료 등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어 실질적인 요금 인하 효과를 반감시킬 것”이라며 “비용 절감 과정에서 통신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래부는 9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통신비 인하 업무보고를 앞두고 8일 오후 통신3사 대관 담당 임원들을 소집해 관련 대책을 논의했다. 최민희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 위원이 전날 브리핑에서 밝힌 2세대(2G), 3세대(3G) 기본료 우선 폐지 방안을 중심으로 보고안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기본료 폐지 공약의 기본 틀을 짠 참여연대는 ‘공약 후퇴’를 언급하며 국정기획위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에서 “2G, 3G 기본료만 폐지하는 것은 대선 공약의 명백한 후퇴”라고 했다. 이개호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금 기본료 제도가 남아 있는 것은 2G, 3G 단말기와 LTE 단말기 가운데 일부이며 이를 일괄 폐지하겠다는 것”이라며 “대선 공약에서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