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과점 기업 '갑질'도 징벌적 손해배상
더불어민주당과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독과점 기업의 ‘갑질’과 담합 등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손해액의 최대 세 배까지 배상 책임을 묻는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불공정행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배상을 촉진하고 기업의 법 위반 억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다.

여당 관계자는 8일 “대리점법 하도급법 등에 한해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담합 등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도 확대 도입하는 법 개정안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본격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해철 민주당 국회의원 등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독과점 기업 '갑질'도 징벌적 손해배상
여당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적용’이 포함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임시국회 처리 중점 법안으로 선정했다. 국정기획위 관계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는 대통령 공약 사항”이라며 “민주당이 중점 법안으로 꼽은 만큼 국정과제로 선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당과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공정거래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담합, 독과점 기업 갑질 등이 줄지 않아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3년 3647억원까지 떨어졌던 담합 과징금은 지난해 7560억원까지 늘었다. 올 들어 공정위에 적발된 사건을 보면 ‘돈가스 소시지 등 22개 군납 급식류 입찰담합’ ‘4개 면세점 업체의 가격 담합’ 등 실생활 밀접분야의 담합이나 하도급업체를 대상으로 한 서울메트로의 거래상 지위남용 등 경쟁할 필요가 없는 독점 공기업의 갑질이 많다.

지난 정부에서 공정거래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인 공정위에서도 미묘한 입장 변화 기류가 감지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미국에선 독점금지법에만 징벌적 손해배상 배율이 최대 3배로 정해져 있고 나머지 법엔 한도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손해배상제가 작동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정치권이 도입을 추진한다면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기업 규제 전방위 확산 우려

재계에선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시작으로 기업 규제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당과 공정위는 ‘재벌 개혁’을 내세워 강력한 기업 규제 법안들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계열분리·기업분할 명령제다. 가격규제 등 행태 규제만으로는 독과점 폐해를 시정하기 어려울 때 독과점 기업을 대기업집단에서 분리하거나 기업을 분할하도록 하는 제도다. 김상조 공정위원장 후보자도 ‘최후의 수단’을 전제로 지난 2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도입 필요성을 인정했다.

‘다중대표소송제’ 역시 도입이 유력한 제도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의 불법행위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당정은 기업의 부당행위로 피해를 본 소비자가 소송에서 이기면 나머지 피해자도 모두 배상받는 ‘집단소송제도’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국내에선 증권 분야에만 도입돼 있다. 김 후보자도 인사청문회 답변을 통해 비상장업체의 사익편취 행위에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고 허위·과장광고 등에 집단소송제를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밖에 현재 ‘3배’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배상배율 확대, 총수일가가 보유한 특정 업체의 자회사도 총수일가 영향권에 있다고 보고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간접지분 규제, 금융보험사·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 등도 도입이 예상되는 규제로 꼽힌다.

◆국내 법체계와 맞지 않아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우선 집단소송제, 다중대표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결합하면 미국처럼 수조원대 천문학적 규모의 ‘묻지마 소송’이 남발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경우 소송이 남발할 수 있고 국내 민사법 체계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실손해배상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이미 도입된 하도급법 등은 한정된 분야를 규율하는 것과 달리 공정거래법은 전체 상거래에 적용되기 때문에 시장 충격이 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과징금, 검찰 고발 등의 제재가 있는 상황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면 과잉 규제가 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일부 제도는 해외에서도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분석돼 논란이 예상된다. 계열분리·기업분할 명령제는 미국에 도입돼 있지만 100년간 실적이 두 건에 불과하다. 최근 35년간 실적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실효성은 없으면서 국민에게 재벌 해체라는 과격한 인상을 준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