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TV를 보다가 낯선 단어 하나가 귀에 들어왔다. ‘공기유목민’이었다. 맑은 공기를 찾아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란다. 대도시의 나쁜 공기로 아이들이 만성 호흡기 질환이나 아토피 같은 피부질환으로 고생하고, 이를 견디다 못해 도시 주변 심지어 제주도로 이주하거나 아예 이민을 고려하는 가족이 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3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서울은 중국 베이징, 인도 델리와 함께 대기오염이 심한 3대 도시다. 오염도가 이대로 지속되면 2060년께 한국인 900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한다. 참으로 무섭고 걱정스러운 일이다.
어릴 적 산골에서 자란 필자에게 맑은 공기는 기본이요, 뛰어놀다 목마르면 마실 수 있는 개울물도 널려 있었다. 너무 흔해 귀한 줄 모르고 살았던 셈이다. 오히려 자동차 매연이나 공장 굴뚝 연기를 대도시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나 부유함의 상징으로 여긴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흔하던 맑은 공기는 오늘날 더 이상 흔하지 않다. 집집마다 공기청정기를 구비해 두고 마스크 없이는 산책도 마음 편히 할 수 없는 세상이다. 정부는 노후 화력발전소 가동을 중단시키고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 미세먼지 측정기 설치를 지원한다고 한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잘 검토해서 추진해야 할 테지만 무척 반가운 소식이다.
이번 남산 둘레길 산책에서 만끽한 즐거움이 어쩌다 한번 누릴 수 있는 선물 같은 것이 아니라 언제나 누릴 수 있는 권리였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공기유목민으로 살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드는 게 우리 어른들의 책무 아닐까. 자연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서 빌려 쓰는 것이라는 인디언들의 잠언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함영주 < KEB하나은행장 hana001@hanaf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