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 깜빡이' 켠 한은…"금리 인상 쪽으로 반걸음 옮겨"
“기준금리 인하의 필요성이 이전보다 줄었다.”(2017년 4월13일, 금융통화위원회 간담회)→ “경제 수준을 고려했을 때 현재 금리 수준도 충분히 완화적이다.”(5월25일, 금융통화위원회 간담회)→ “경제 상황이 보다 뚜렷이 개선되면 통화정책 완화 정도의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6월12일, 한국은행 창립 67주년 기념사)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사진)가 ‘매파(통화 긴축론자)’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통화정책 관련 발언의 톤을 조금씩 달리하며 시장에 신호를 주고 있다. “경기 회복세가 지속돼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긴 했지만 “한 달 새 금리 인상 가능성에 반걸음 더 다가갔다”(윤면식 한은 부총재보)는 해석이 나온다.
'긴축 깜빡이' 켠 한은…"금리 인상 쪽으로 반걸음 옮겨"
◆무르익는 대외 여건

이 총재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건 2014년 4월 취임 이후 3년 만에 처음이다. 취임 당시 연 2.5%이던 금리는 다섯 차례에 걸쳐 인하돼 지난해 6월부터 사상 최저인 연 1.25%가 유지되고 있다. 12일 “통화정책 완화 정도의 조정 가능성을 면밀하게 검토하겠다”는 이 총재의 발언을 두고 “그만큼 금리 인상을 위한 대내외적 여건이 무르익은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일단 13~14일(현지시간) 미국 중앙은행(Fed)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시장에선 현재 연 0.75~1.0%에서 연 1.0~1.25%로 올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금리 상단을 기준으로 미국과 한국의 정책금리가 같아지는 셈이다. Fed가 올 하반기에도 한 차례 더 올리면 10년 만에 한·미 간 금리 역전이 벌어진다. 이는 곧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 우려로 이어져 한은 금리 인상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예상을 웃돌고 있는 경제 회복세도 배경으로 꼽힌다. 이 총재는 이날 “올해 경제 성장률이 지난 4월 전망치(2.6%)를 웃돌 것”이라며 “새 정부의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 방안이 실행에 옮겨지면 성장세가 더 가팔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4월 종전 2.5%였던 성장률 전망치를 2.6%로 상향 조정한 데 이어 다음달에도 0.1%포인트가량 올려 잡을 전망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수출이 호조를 나타내고 있는 데다 건설 투자가 성장을 견인하고 있어서다.

치솟고 있는 부동산 가격과 불어난 가계부채도 금리 인상의 고려 요인이다. 마침 새 정부 첫 경제팀은 집값 과열을 잡기 위해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금리 인상 시점은

다만 한은이 이른 시일 내 금리 인상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새 정부가 11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이 새 정부의 경기 부양 의지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장 금리를 올린다는 신호라기보다는 금리 인상 쪽으로 보폭을 좀 더 옮겨놓는다는 흐름의 변화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며 “꺼져 있던 ‘금리 인상 깜빡이’가 미약하게나마 켜진 수준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은 내년 이후 가능할 것이라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다음번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는 다음달 13일 열린다.

이날 이 총재의 ‘긴축’ 신호에 국고채 금리는 큰 폭으로 뛰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이날 전 거래일보다 0.065%포인트 오른 연 1.697%로 거래를 마쳤다. 국고채 금리는 올 3월 이후 하락세를 이어오며 지난 7일엔 올 상반기 저점 수준에 달하는 연 1.621%(3년 만기 기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김은정/서기열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