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고가공원, 근대건축 활용 좋은 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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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 보존운동하는 안창모 한국도코모모 설립 추진위원장
“서울 남산 2호 터널이 교통이 아니라 방공호 기능으로 지어진 거 아세요?”
한국도코모모(한국근대건축보존회) 설립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사진)의 방은 책과 자료가 꽂힌 책장이 앞뒤로 빼곡해 작은 도서관을 방불케 했다. 그는 1996년 서울대 강사 시절 《한국 현대 건축 50년》이라는 책을 펴내 주목받는 등 일찍이 한국 근현대건축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학자다.
오는 10월 한국도코모모 재출범을 앞두고 만난 안 교수는 “모든 근대건축물은 우리의 과거와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삶의 결과물이자 역사적 증거”라고 말했다. 덕수궁 석조전처럼 꼭 아름다운 건축물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도코모모는 1988년 네덜란드에서 결성돼 세계 70여 개국이 가입한 국제비영리단체다. 한국도코모모는 2003년 설립됐다. 하지만 3년 전 내부 갈등으로 홍역을 겪고 재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사람들은 남산 2호 터널과 장충동 일대를 신라호텔과 면세점이 있는 곳으로만 생각하는데, 실은 대한제국과 식민지사, 해방 후 반공이라는 현대사가 관통하는 장소예요.” 1900년 고종이 을미사변(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에서 순국한 홍계훈과 이경직 등의 혼을 위로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장충단을 만들면서 장충동은 우리 역사 전면에 등장했다. 그러나 장충단이 일제강점 이후 일본인을 위한 공원으로 바뀌면서 치욕의 현장이 됐다.
“장충동은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하고 나선 ‘반공의 성지’로 변신합니다.” 1968년 김신조 등 북한 군인 31명이 청와대 300m 앞까지 들이닥친 1·21사태 이후에는 ‘서울요새화계획’의 일환으로 남산 1호 터널과 2호 터널이 건설됐다. 그는 “2호 터널은 1·3호 터널과 달리 남산을 동서로 가로질러 지금도 교통량이 많지 않다”며 “전쟁 발발 시 대피 방공호 역할로 지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도코모모의 목적은 근대건축물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계속 살아숨쉬도록 하는 데 있다”고 했다. “모든 문화유산은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근대건축엔 바로 우리 부모 세대들의 추억과 기억이 담겨 있어요. 부모와 자식 세대를 이어주는 소통 수단이 됩니다.”
서울역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박물관으로 쓰거나, 서울역 고가차도의 일부 모습을 남겨두면서 보행거리인 ‘서울로’로 탈바꿈시킨 것들에 대해 “근대건축을 우리 삶 속에서 활용하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한국도코모모(한국근대건축보존회) 설립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사진)의 방은 책과 자료가 꽂힌 책장이 앞뒤로 빼곡해 작은 도서관을 방불케 했다. 그는 1996년 서울대 강사 시절 《한국 현대 건축 50년》이라는 책을 펴내 주목받는 등 일찍이 한국 근현대건축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학자다.
오는 10월 한국도코모모 재출범을 앞두고 만난 안 교수는 “모든 근대건축물은 우리의 과거와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삶의 결과물이자 역사적 증거”라고 말했다. 덕수궁 석조전처럼 꼭 아름다운 건축물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도코모모는 1988년 네덜란드에서 결성돼 세계 70여 개국이 가입한 국제비영리단체다. 한국도코모모는 2003년 설립됐다. 하지만 3년 전 내부 갈등으로 홍역을 겪고 재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사람들은 남산 2호 터널과 장충동 일대를 신라호텔과 면세점이 있는 곳으로만 생각하는데, 실은 대한제국과 식민지사, 해방 후 반공이라는 현대사가 관통하는 장소예요.” 1900년 고종이 을미사변(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에서 순국한 홍계훈과 이경직 등의 혼을 위로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장충단을 만들면서 장충동은 우리 역사 전면에 등장했다. 그러나 장충단이 일제강점 이후 일본인을 위한 공원으로 바뀌면서 치욕의 현장이 됐다.
“장충동은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하고 나선 ‘반공의 성지’로 변신합니다.” 1968년 김신조 등 북한 군인 31명이 청와대 300m 앞까지 들이닥친 1·21사태 이후에는 ‘서울요새화계획’의 일환으로 남산 1호 터널과 2호 터널이 건설됐다. 그는 “2호 터널은 1·3호 터널과 달리 남산을 동서로 가로질러 지금도 교통량이 많지 않다”며 “전쟁 발발 시 대피 방공호 역할로 지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도코모모의 목적은 근대건축물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계속 살아숨쉬도록 하는 데 있다”고 했다. “모든 문화유산은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근대건축엔 바로 우리 부모 세대들의 추억과 기억이 담겨 있어요. 부모와 자식 세대를 이어주는 소통 수단이 됩니다.”
서울역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박물관으로 쓰거나, 서울역 고가차도의 일부 모습을 남겨두면서 보행거리인 ‘서울로’로 탈바꿈시킨 것들에 대해 “근대건축을 우리 삶 속에서 활용하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