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숭동 수현재씨어터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찌질의 역사’.
서울 동숭동 수현재씨어터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찌질의 역사’.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세 편이 이달 잇따라 개막한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세 편이 한 달 새 무대에 오르는 것은 흔치 않아 눈길을 끈다.

지난 3일 서울 동숭동 수현재씨어터에서 개막해 오는 8월27일까지 계속하는 초연 뮤지컬 ‘찌질의 역사’는 김풍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남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만한 연애에 대한 ‘부끄러운 기억’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극중 서민기는 여자친구 윤설하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가 용서받은 뒤 “잘못했어…. 그런데 너도 잘못한 거 있는 거 알지?”라고 말한다. 윤설하와 스킨십을 하며 “전 남자친구와도 이렇게 했어?” “몇 번이나 했어?”라고 물어 분위기를 깬다. 스티커사진, 힙합바지 등 1980~1990년대 유행을 극에서 볼 수 있고 당시 인기가요도 배경음악으로 나와 30~40대 관객의 감정이입을 유도한다.

극이 끝날 때 등장인물들은 “늘 뉘우치고 반성했고, 이런 성장을 거쳐 나를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완성이란 없다는 것을…”, “그런 나의 나약함에 한없는 절망을 느꼈을 때. 그제서야 나의 찌질함을 당당히 마주할 수 있게 됐다. 그것이 나의 역사이니까”라고 독백한다. 이들과 같은 ‘찌질한 연애’를 경험한 관객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될 만한 장면이다.

오는 23일부터 다음달 31일까지는 강도하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위대한 캣츠비’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무대에 오른다. “내게 사랑은 종교야”라고 말할 정도로 연애에 몰입하는 청춘들의 순수하면서도 가슴 아픈 얘기를 그렸다. 30일부터 다음달 22일까지는 주호민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신과 함께: 저승편’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이승에서 39년 평범하게 살아온 한 직장인이 죽은 뒤 저승의 염라대왕 재판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이 두 작품은 모두 2015년 초연했으며 관객의 평가가 좋아 올해 재개막한다.

웹툰을 보는 사람들이 주로 젊은 층이어서 이들 뮤지컬도 개성있고 재밌게 제작됐다는 특징이 있다. 이유리 서울예술대 미디어창작학부 교수는 “웹툰은 상상력이 살아 있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이를 무대에 맞는 표현으로 발전시키면 뮤지컬 연출의 지평이 넓어질 수 있다”며 “로맨틱 코미디 위주인 국내 창작 뮤지컬이 웹툰 원작을 통해 주제도 다양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과 함께’ ‘위대한 캣츠비’는 깊이 들여다보면 모두 사회 풍자적인 면이 있는 작품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웹툰 뮤지컬을 공연계에 안착시키기 위해 뮤지컬계가 풀어야 할 과제를 지목했다. 그는 “뮤지컬로서의 실험과 도전, 예술성과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하면 굳이 왜 웹툰을 뮤지컬로 다시 보여줘야 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뮤지컬로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수반돼야 비로소 이런 시도가 성과를 낳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