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메이드 인 코리아' 감추는 기업들
“우리 제품이 국산이라는 걸 소비자들이 몰랐으면 좋겠어요.”

100만원이 넘는 고가 침구류를 생산하는 국내 중소기업 대표 A씨의 얘기다. A씨 회사의 제품은 최고급 호텔과 고급 아파트에서 주로 사용한다. 제품 포장을 뜯어보면 한글은 거의 없고 영어와 일어 일색이다. 한국 기업 제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유럽과 일본에서 원자재를 들여와 중국에서 생산하기 때문에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A씨는 “고객사가 제품당 5000원을 추가로 부담하면 마무리 공정을 국내에서 마쳐 ‘메이드 인 코리아’ 꼬리표를 붙여주기도 한다”며 “그러나 추가 금액을 내면서 국산을 고집하는 고객은 극소수”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해외 유명 브랜드가 이미 흔하기 때문에 중국산이라는 꼬리표가 ‘흠’이 되던 시절은 지났다”며 “명품 브랜드처럼 보이는 데 국산이란 이미지가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침구류업계뿐만이 아니다. 300만원대 최고급 어린이 전동차를 만드는 국내 기업 디트로네 관계자는 “유럽의 초기 자동차 형태를 모티브로 한 제품을 내놓는 만큼 국산 제품임을 특별히 강조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야마하와 함께 세계 시장에서 양대산맥을 이루는 디지털 피아노 브랜드 ‘커즈와일’을 보유한 영창뮤직도 굳이 이 사실을 적극 홍보하지 않는다.

우리와 경제 규모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이탈리아 기업은 분위기가 정반대였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전면에 내세운다. 고기능성 합성원단을 생산하는 이탈리아 기업 알칸타라 S.p.A의 안드레아 보라뇨 회장은 “알칸타라가 명품 이미지를 갖는 데는 이탈리아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 역할이 컸다”며 “많은 기업이 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위해 국내에서 제품을 생산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는 제조업 부활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해외로 나간 국내 기업을 다시 불러들이고, 해외 기업들의 제조공장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란 국가 브랜드를 키우지 못하고, 감추기에만 급급하다면 제조업 부활도 먼 얘기일 수밖에 없다.

이우상 볼로냐/중소기업부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