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진 저널] 노예의 길
새 정부가 좌(左)편향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경제적 민주주의’라는 대형 간판을 걸어 놓고 비정규직 제로(0)화, 최저임금 상향 조정, 근로시간 제한, 통신료 인하 등 시장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려는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하는 중이다. 우파는 이 같은 정책들이 한국 경제의 퇴조를 부르며 그리스, 베네수엘라, 브라질과 다를 바 없는 ‘노예의 길’로 들어서게 할 것이라는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정부가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체제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고 단정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명저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을 그대로 차용한 비유다.

계획은 비효율적이고 퇴행적일 뿐 아니라 자유를 파괴하고 결국 사람들을 ‘노예의 길’로 이끈다는 게 하이에크의 견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를 해소하는 경제적 민주주의의 구현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자 가치라는 게 새 정부의 입장이지만 궁극적 가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라고 하이에크는 역설한다.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계획이나 정책이라는 수단을 통해 인위적으로 바꾸려 들면 정부의 선의와는 정반대 결과로 이어지는 가운데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게 그의 주장이기도 하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1만원’ ‘통신요금 인하’ 등 자율적 시장가격을 정부가 나서서 인위적으로 규제하려는 시도는 프랑스 혁명기의 로베스피에르가 우윳값을 통제하려 했던 고전적 실패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로베스피에르는 공포의 독재자였다. 그는 프랑스 어린아이들의 건강 보육권을 내세우며 “우윳값을 내리라”고 명령했다. 정부가 책정한 가격 이상으로 판매하는 사람은 단두대 신세를 면치 못하리라는 경고까지 붙였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우윳값을 동결하자 우유를 생산하던 농부들이 소 사육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우유 공급이 줄어든 것은 불문가지였다.

로베스피에르가 우유 공급이 줄어든 이유를 묻자 농부들은 “건초값이 비싸 수지를 맞출 수 없다”고 둘러댔다. 그러자 로베스피에르는 “건초값도 내리라”고 엄명했다. 수지를 맞추기 어려워진 건초상들이 건초밭을 불살라 버리기 시작했다. 건초가 없는 상황에서 소 사육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다. 프랑스 전역에 우유 파동이 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갓난아이들의 건강보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취한 선의의 조치가 젖병의 우유를 마르게 한 재앙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국가를 지상의 지옥으로 만들어 온 것은 인간이 그것을 천국으로 만들려고 애쓴 결과였다”고 한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풍자는 이에 딱 들어맞는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인위적이고도 급격한 최저임금 상향 조정으로 득을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겠지만 이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볼 사람들은 영세 자영업자를 포함한 힘없는 중소업체들이라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일자리가 재난 수준이라며 요건조차 충족되지 않는 추경을 요청하고 있는 새 정부의 공공일자리 정책에 대해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국내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공공 분야 일자리는 진짜 일자리가 아니다. 글로벌 경쟁력을 잃는 일”이라고 일갈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정규직 제로화 또한 혜택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환호와 박수의 대상일지 몰라도 전체 일자리를 줄이는 노예의 길이자 일자리 재앙이 될 것이 뻔하다. 모든 ‘일자리의 정규직화’로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보충하기 위해 어딘가에서는 그만큼 일자리를 줄이려는 노력이 배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변했다. 이명박·박근혜 우파정권은 문재인 좌파정권으로 바뀌어 자유보다는 민주주의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의로운 사회’라는 도덕적 규범이 구현돼 유토피아로 이어지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노예의 길로 접어드는 과정이어서는 곤란하다.

양봉진 < 세종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