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식품 커피 브랜드 CF는 한국 방송 CF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 안성기를 기용한 CF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1983년 동서식품 인스턴트커피 브랜드 그래뉼을 시작으로 30여 년간 맥심, 프리마, 맥스웰 캔커피 등 각종 커피 브랜드를 망라했다.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 등 추억을 환기시키는 카피들은 지금도 회자된다. 안성기의 커피 CF는 새롭게 등장한 대한민국 중산층 가정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했다. 또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여유와 사색의 시간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해 왔다.

안성기 이후 당대 톱스타인 한석규, 이병헌, 조인성, 원빈에 이어 공유도 커피 CF에 등장했다. 새로운 ‘카누 라떼’를 대변하는 공유의 CF는 커피하우스 오픈을 준비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카누 라떼 곽을 그대로 닮은 커피하우스는 도심 속 풀과 나무가 있는 공원 안에 있다. 내레이션이 흐른다. “카누에 부드러움을 더해 카누 라떼 오픈. 카누니까 라떼에도 깊이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설레는 카페, 카누 라떼.”

2010년대 ‘공유 커피’는 1980년대 ‘안성기 커피’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안성기 시대에는 각종 인스턴트커피가 근본적으로 ‘가정 커피’ 이미지였다. 회사 일을 마치고 귀가하면 자신을 맞아주는 아내가 있고, 가정의 푸근함을 느끼며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그러나 공유는 ‘카누 라떼 곽 모양의 커피하우스를 연다’는 콘셉트처럼 혼자 커피를 즐기는 현대인을 암시한다. 커피를 사러 오는 사람도 혼자, 만드는 사람도 혼자다. 혼자 타서 마시는 인스턴트커피다. 그 커피하우스는 ‘도심 속 공원’이라는 도심 직장인들의 마음의 안식처에 있다.

1980년대에는 다방이라는 컴컴한 공간에서 따스하고 평화로운 가정으로 인스턴트커피를 옮겨놓는다는 의미였다. 2010년대 커피숍은 이미 더할 나위 없이 양성화된 공간이자 대화와 친목의 공간이 됐다. 인스턴트커피의 역할도 달라진다. 바쁜 직장생활 중 가능한 장소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게 해준다. 그것도 브랜드 커피숍만큼 고급화된 커피 맛을 선사하면서.

이뿐만 아니다. 2010년대 30대 남성은 1980년대처럼 결혼한 가장이란 규정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 ‘혼자’가 많다. 안성기 시절의 카피가 먹히지 않는다.

말하자면, 사회인으로서의 바쁜 삶에 익숙해진 30대가 여유를 찾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 선택한 고급 인스턴트커피라는 메시지가 된다. 시대 변화에 잘 맞다. 지금의 타깃층을 명확히 인식한 CF로 볼 수 있다.

동서식품 커피브랜드 CF는 언제나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공감을 얻었다. IMF 외환위기가 터진 1990년대 말엔 한석규를 내세워 “이 세상 가장 향기로운 커피는 당신과 마시는 커피입니다”란 카피로 흉흉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인간미를 강조해 잔잔한 감동을 줬다. 고급 커피숍 브랜드들이 시장을 강타했을 땐 “마음 한 잔, 맥심”이란 카피로 ‘상대방이 직접 타주는 커피’의 각별함을 내세웠다. 이제는 고급 인스턴트커피를 홀로 즐기는 시간과 공간이 “세상에서 가장 설레는 카페”라고 말하고 있다.

커피를 통해 시대 풍파를 함께 겪으며 성장한 동서식품의 CF는 그 메시지와 함께 시대 공기 변화도 가늠할 수 있어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누군가 ‘한국에서 인스턴트커피란 어떤 의미였나’를 연구하려 할 때 동서식품 CF만 점검해봐도 무방할 정도다.

카누 라떼 ‘세상에서 가장 설레는 카페’ 편은 그 자체로 완성도뿐 아니라 사회문화 흐름의 현주소까지 단번에 보여주고 있는 특별한 CF 최신작이다.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