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책 안 읽는다" 고객 탓만 하는 서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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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없는 서점을 누가 찾아가겠나
"책 넘어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한다"
일본 서점 '쓰타야' 혁신 벤치마킹해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책 넘어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한다"
일본 서점 '쓰타야' 혁신 벤치마킹해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종로서적이 다시 문을 열었다 해서 찾아가 봤다. 말 그대로 추억의 종로서적이다. 하지만 기대가 커서였을까. 생각과 달랐다. 규모가 작은 탓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것은 거의 없다는 느낌이었다.
종로서적을 둘러보고 떠올린 곳이 ‘쓰타야’다. 일본에 들르면 꼭 찾아보는 서점이다. 며칠 전 오사카 출장 때도 시간을 쪼개 호텔 인근의 번화가 에비스바시의 쓰타야를 찾았다. 들어서면 기분이 좋아지고 여유와 힐링이 느껴진다는 그 서점이다.
쓰타야는 1983년 창업한 서점 체인이다. 1700개 점포를 둔 이 회사는 2012년 기노쿠니야를 제치고 일본 최고의 서점 자리에 올랐다. 책을 넘어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한다는 창업자 마쓰다 무네아키 사장의 전략이 먹혀든 덕분이다.
우선 고객들이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그것도 카페 수준의 분위기다. 에비스바시점도 좌석이 230개나 됐다. 작은 도서관이나 다름없다.
커피를 들고 들어가도 무방하다. 아예 스타벅스가 모든 점포에 입점해 있다. 커피향에 이끌려 서점에 들어오는 고객들도 적지 않다. 결코 서두를 일이 없다. 누구 하나 눈치 주는 사람이 없다. 폐점 시간도 대부분 밤 12시 이후다. 에비스바시처럼 도심 점포는 새벽 6시까지 문을 열어놓는다.
책이나 음반은 기본이다. 여행 서적을 읽다가 어디론가 떠나고 싶으면 그 자리에서 여행 상품을 구매한다. 스포츠 서적을 읽다가 테니스 라켓이나 자전거를 사는 곳이다. 요리책을 보다가 불쑥 그릇을 사고, 가드닝 책을 보다가 씨앗과 화분을 구매하게 되는 그런 곳이다. 일반 서점에는 어떤 책을 사겠다는 목적을 갖고 찾아가지만 목적 없이 찾아가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곳이 쓰타야다.
쓰타야를 처음 접한 건 수년 전 도쿄에서다. 패션의 발신지라는 다이칸야마에 들렀다가 새로운 서점을 발견하곤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쓰타야 T사이트’다. 4000평 부지에 10개 동으로 이뤄진 서점은 20만 권이 넘는 서적과 수십만 장의 CD와 DVD를 준비해놓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커피숍에 갤러리, 카메라, 스마트폰, 장난감, 여행사, 소아과 병원, 펫숍 등 라이프 스타일 제안형 상품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매개는 모두 책이다.
쓰타야는 점포마다 특징이 있다. 6000만 명 회원의 소비 동향을 분석해 매장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전국 다섯 곳에 있는 T사이트는 일본 개인 자산의 90%를 보유한 60대 이상의 부유한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한다. 인테리어와 상품 구성이 고급스럽다. 여성들이 꿈꾸는 여행지 삿포로에는 30~50대 여성을 타깃으로 삼은 매장이 있다. 도쿄의 긴자식스에는 예술 관련 서적, 롯폰기에는 수입 희귀 서적, 세타가야에는 만화책으로 가득한 점포가 있다. 오사카 우메다에는 스타트업 카페가 있고 후쿠오카에는 중고서적이 43만 권이나 있는 매장이 있다. 관광지처럼 붐빈다.
그렇게 해서 책이 얼마나 팔릴까. 지난해 2조4000억원 매출에서 서적과 잡지만 따져도 1조3000억원이다. 22년 연속 성장이다. 같은 기간 한국의 3대 오프라인서점과 3대 온라인서점이 올린 매출이 문구류 등까지 모든 것을 다 포함해도 1조6000억원에 불과한 것과 대조적이다.
쓰타야는 이제 지방자치단체에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사가현 다케오시립도서관의 리뉴얼이 대표적인 사례다. 5만 명 인구의 소도시 도서관이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대성공이다. 신세계가 코엑스에 문을 연 별마당도서관의 모델이기도 하다.
욕구 5단계설을 주창한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의 마지막 단계 욕망을 ‘자아실현’이라고 했다. 그 단계를 비즈니스모델로 삼아 혁신에 나선 게 쓰타야의 성공 비결이다.
어느 산업도 지금까지의 플랫폼으로는 더 이상 꾸려나갈 수 없는 시대가 됐다. 플랫폼의 혁신과 융복합화는 이루지 않은 채 독서인구가 늘어나길 바란다는 것은 감나무 밑에 누워 홍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 국민이 갈수록 책을 멀리하는 가장 큰 이유가 서점에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 볼 때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종로서적을 둘러보고 떠올린 곳이 ‘쓰타야’다. 일본에 들르면 꼭 찾아보는 서점이다. 며칠 전 오사카 출장 때도 시간을 쪼개 호텔 인근의 번화가 에비스바시의 쓰타야를 찾았다. 들어서면 기분이 좋아지고 여유와 힐링이 느껴진다는 그 서점이다.
쓰타야는 1983년 창업한 서점 체인이다. 1700개 점포를 둔 이 회사는 2012년 기노쿠니야를 제치고 일본 최고의 서점 자리에 올랐다. 책을 넘어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한다는 창업자 마쓰다 무네아키 사장의 전략이 먹혀든 덕분이다.
우선 고객들이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그것도 카페 수준의 분위기다. 에비스바시점도 좌석이 230개나 됐다. 작은 도서관이나 다름없다.
커피를 들고 들어가도 무방하다. 아예 스타벅스가 모든 점포에 입점해 있다. 커피향에 이끌려 서점에 들어오는 고객들도 적지 않다. 결코 서두를 일이 없다. 누구 하나 눈치 주는 사람이 없다. 폐점 시간도 대부분 밤 12시 이후다. 에비스바시처럼 도심 점포는 새벽 6시까지 문을 열어놓는다.
책이나 음반은 기본이다. 여행 서적을 읽다가 어디론가 떠나고 싶으면 그 자리에서 여행 상품을 구매한다. 스포츠 서적을 읽다가 테니스 라켓이나 자전거를 사는 곳이다. 요리책을 보다가 불쑥 그릇을 사고, 가드닝 책을 보다가 씨앗과 화분을 구매하게 되는 그런 곳이다. 일반 서점에는 어떤 책을 사겠다는 목적을 갖고 찾아가지만 목적 없이 찾아가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곳이 쓰타야다.
쓰타야를 처음 접한 건 수년 전 도쿄에서다. 패션의 발신지라는 다이칸야마에 들렀다가 새로운 서점을 발견하곤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쓰타야 T사이트’다. 4000평 부지에 10개 동으로 이뤄진 서점은 20만 권이 넘는 서적과 수십만 장의 CD와 DVD를 준비해놓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커피숍에 갤러리, 카메라, 스마트폰, 장난감, 여행사, 소아과 병원, 펫숍 등 라이프 스타일 제안형 상품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매개는 모두 책이다.
쓰타야는 점포마다 특징이 있다. 6000만 명 회원의 소비 동향을 분석해 매장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전국 다섯 곳에 있는 T사이트는 일본 개인 자산의 90%를 보유한 60대 이상의 부유한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한다. 인테리어와 상품 구성이 고급스럽다. 여성들이 꿈꾸는 여행지 삿포로에는 30~50대 여성을 타깃으로 삼은 매장이 있다. 도쿄의 긴자식스에는 예술 관련 서적, 롯폰기에는 수입 희귀 서적, 세타가야에는 만화책으로 가득한 점포가 있다. 오사카 우메다에는 스타트업 카페가 있고 후쿠오카에는 중고서적이 43만 권이나 있는 매장이 있다. 관광지처럼 붐빈다.
그렇게 해서 책이 얼마나 팔릴까. 지난해 2조4000억원 매출에서 서적과 잡지만 따져도 1조3000억원이다. 22년 연속 성장이다. 같은 기간 한국의 3대 오프라인서점과 3대 온라인서점이 올린 매출이 문구류 등까지 모든 것을 다 포함해도 1조6000억원에 불과한 것과 대조적이다.
쓰타야는 이제 지방자치단체에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사가현 다케오시립도서관의 리뉴얼이 대표적인 사례다. 5만 명 인구의 소도시 도서관이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대성공이다. 신세계가 코엑스에 문을 연 별마당도서관의 모델이기도 하다.
욕구 5단계설을 주창한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의 마지막 단계 욕망을 ‘자아실현’이라고 했다. 그 단계를 비즈니스모델로 삼아 혁신에 나선 게 쓰타야의 성공 비결이다.
어느 산업도 지금까지의 플랫폼으로는 더 이상 꾸려나갈 수 없는 시대가 됐다. 플랫폼의 혁신과 융복합화는 이루지 않은 채 독서인구가 늘어나길 바란다는 것은 감나무 밑에 누워 홍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 국민이 갈수록 책을 멀리하는 가장 큰 이유가 서점에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 볼 때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