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이동통신 기본요금 폐지 등 강제적인 통신비 인하 정책이 해외 투자자들의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의 인위적인 시장 가격 통제와 이에 따른 민간 기업들의 기업 가치 하락이 ISD가 규정한 ‘공정·공평한 대우(fair and equitable treatment)’ 조항 위반에 해당돼 국제 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 "통신 기본료 폐지는 ISD 소송감"
◆“반(反)시장 정책, ISD 제소 대상”

국내 대형 로펌 관계자는 1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통신사의 매출 감소로 이어지는 기본료 폐지는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손해를 발생시켰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유무역협정(FTA)과 양자투자협정(BIT)에 명시돼 있는 ISD를 활용해 통신 3사에 투자한 해외 기관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달 현재 국내 통신 3사의 외국인 투자 비중은 SK텔레콤 44%, KT 49%, LG유플러스 46%다.

ISD는 투자 유치국의 정책 변화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고, 불합리한 차별 대우로 발생한 손해로부터 외국인 투자자를 보호하는 제도다. 다른 로펌 관계자도 “ISD에 포함된 공정·공평 대우 조항은 투자 유치국의 법령에 상관없이 외국인 재산을 대우할 때 존중해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라며 “기업 이익을 현저히 침해하는 정부의 반시장 정책은 언제든지 ISD 제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론스타 ISD 소송에 400억원 투입

ISD는 패소 시 투자 유치국이 막대한 손해배상 피해를 본다. 소송 대응에도 적잖은 국민 혈세가 투입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소송 건이다.

론스타는 2012년 11월 한국 정부의 외환은행 매각승인 지연과 불합리한 이중 과세로 46억7900만달러(약 5조2620억원) 상당의 피해를 봤다며 ISD 소송을 제기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2013년부터 작년까지 론스타 ISD 소송 대응에 395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ISD는 패소 시 배상액 등으로 국고 손실을 가져오고 이를 사례로 다른 투자자들이 유사 소송을 펼칠 우려가 있어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해외 IB, 정부 시장 개입 ‘경고’

해외 기관투자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기본료 폐지 등 강제적인 통신비 인하 움직임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유럽 최대 투자은행(IB)인 도이치뱅크는 지난 6일 펴낸 마켓리서치에서 “정부 규제 영향으로 한국 통신업계 전체의 기업 가치는 아시아 지역 통신업계 대비 42%가량 저평가돼 있다”며 “월 1만1000원의 기본료가 폐지되면 한국 통신산업 수익성은 붕괴되고 투자자들의 관심을 완전히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오는 19일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다섯 번째 통신비 인하 업무보고를 받는다. 국정기획위는 애초 2세대(2G), 3세대(3G) 기본료 우선 폐지로 정책 방향을 잡았다가, 시민단체들의 압박에 4세대(LTE) 통신도 기본료 폐지에 상응하는 요금 할인을 추진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최민희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 위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 나와 “소비자들이 원하는 요금 인하 폭은 1만원 정도”라며 “(통신사들이) 그만큼 인하할 여력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 투자자국가소송제

investor-state dispute·ISD. 외국인 투자자나 기업이 현지 정부의 불합리한 정책과 차별대우, 협정·계약 위반 등으로 손해를 봤을 때 해당국을 제3 중재 기구인 세계은행 산하 국제상사분쟁재판소(ICSID)에 제소할 수 있는 제도. 세계 각국이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과 세계 2500여 개 투자협정(BIT) 대부분에 포함돼 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