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형 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외고) 등으로 대변되는 ‘수월성(秀越性) 교육’정책이 존폐 기로에 섰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에 이어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그제 자사고와 외고를 재지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들 학교를 모두 일반고로 바꾸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두 교육감은 “고교 서열화를 없애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교육계는 ‘문재인 정부 교육개혁’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자사고와 외고 폐지는 문 대통령의 교육 분야 대표 공약이다. 때마침 정부는 수능·내신 절대평가, 학업성취도 평가 사실상 폐지 등의 ‘반(反)경쟁’ 교육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전 정부들이 도입한 학교 간 경쟁을 바탕으로 한 고교 다양화 정책들을 한꺼번에 뒤집을 태세다.

특목고가 공교육 정상화 걸림돌이란 인식은 편협한 시각이다. 세계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 인재 양성에 주력하는 마당에 ‘수월성 교육’을 버리고 ‘평등 교육’으로 되돌아가겠다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입시 과열 등 일부 문제점이 있지만 전국에 있는 81개 자사고·외고·국제고는 하향 평준화된 폐해를 보완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대중 정부가 자사고 전신(前身)인 자립형 사립고 제도를 도입한 것도 고교 평준화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과 조희연 교육감 등 일부 진보 교육 행정가들이 “평등 교육을 이루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자녀들을 외고에 진학시킨 것은 뭘 의미하는가. 수월성 교육 필요성을 스스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나. 특목고를 없앤다고 공교육이 살아나고 고교 서열화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획일적 제도는 교육 경쟁력을 갉아먹고, 외고·자사고 폐지는 선호·비선호 일반고를 만들어 또 다른 서열을 심화시킬 뿐이다.

교육정책의 최종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는 무슨 죄가 있나. 정권만 바뀌면 수시로 바뀌는 입시제도 탓에 이들이 겪는 당혹스러움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결과의 평등’을 중시하는 정치 논리가 교육을 황폐화시키는 일을 두고만 볼 수는 없다. 교육정책 당국자들은 공교육의 질과 경쟁력을 높일 방법부터 제시하는 것이 바른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