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북한에 17개월간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돌아오자 미국 사회가 들끓고 있다. 미국 정가와 언론에는 “웜비어가 반복적으로 구타당했다. 비열하고 혐오스런 행동”이라는 등의 비판들이 쏟아지고 있다. “반드시 벌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의료진은 어제 “웜비어가 식중독균에 감염됐다”는 북한의 주장을 반박하며 “뇌 조직 손상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멀쩡한 청년이 의식불명 상태로 돌아왔으니 미국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북 정책에도 영향이 있을 것 같다. 미국 고위 관리들은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 무슨 대화냐”라는 반응들이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북한과 거래한 기업체 리스트를 중국 정부에 넘기고,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촉구했다”고 말했다. 대북 제재 실행에 나선 것이다.

한국의 분위기는 미국과 온도차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6·15 남북정상회담 17주년 기념식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한다면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때 ‘북핵 폐기에 대한 진정성 있는 의사 표명’을 대화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것에 비해 문턱을 낮춘 것이다. 통일부는 민간 접촉을 연이어 승인하고 있다. 그렇다고 북한이 호의적 반응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제재와 대화 병행을 떠드는 것은 추태”라고 오히려 남측 공격에 나섰다.

그럼에도 대북 대화에 매달리는 모양새를 보이는 게 적절한지 생각해 볼 일이다. 무력 위협 수위를 높이면서 협상력을 키우려는 북한의 기(氣)만 키워줄 수 있다. 미·북 대화 가능성이 낮아졌고, 미국이 대북 제재 고삐를 죄는 상황에서 대북 유화책은 한·미 갈등 심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양국은 사드 배치를 놓고 이미 시각차를 확인했다.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