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시장' 예상 깨고…'유럽의 보호주의' 들고나온 마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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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기자의 Global insight
지난 4~5월 프랑스 대통령선거 캠페인 때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후보는 “국부펀드가 해외 벌처펀드 등의 프랑스 기업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에 맞서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국 기업은 선(善)이고 외국의 M&A 시도는 악(惡)으로 규정하는 전형적인 민족주의적, 보호주의적 관점이다.
르펜을 누르고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르펜과 달리 친기업, 친시장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마크롱(사진 오른쪽)에게도 보호주의적 경향이 나타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다음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 공동성명(코뮈니케) 초안을 입수해 15일(현지시간) 보도한 기사를 보면 ‘EU 지도자들이 국가안보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경우 해외 투자를 막을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초안은 마크롱 대통령이 주도하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 왼쪽),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 등이 동조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르펜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이 외국인직접투자(FDI) 검열 구상에 여러 나라가 거부감을 드러냈다. FT는 네덜란드, 북유럽 및 발트해 연안국들이 이에 반대한다고 전했다.
FT는 초안에서 M&A 불허 사유 중 하나로 ‘전략적 이해관계’를 제시한 데 대해 사설로 강하게 비판했다. 2006년 프랑스 정부가 식품회사 다논에 대한 M&A 시도를 ‘전략적 이해관계’를 이유로 막은 사례도 소개했다. 식품회사가 전략적으로 중요할 수 있다면 그 어떤 회사가 중요하지 않겠냐는 지적이다. 그렇게 기준이 모호해선 각국 내 정치적 압력으로 인한 오용을 막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런 구상을 내놓은 배경은 일면 이해가 된다. ‘더 강한 유럽’이 되자고 메르켈과 의기투합한 그는 미국의 보호주의적 행보와 점증하는 중국의 유럽 기업 M&A에 EU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국은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를 통해 외국 자본의 M&A를 감독하고 필요하면 인수를 제한한다. EU는 지금까지 이 문제를 각국 정부의 판단에 맡겨왔다. 마침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정부가 CFIUS 기능을 강화해 외국 투자를 더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미국은 독립위원회 형태로 M&A를 감독하고 있다”며 “EU 차원에서 안보를 위해 뭔가 하려면 이런 독립적 형태를 띠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U가 이런 보호주의적 조치를 강행하면 세계의 보호무역 경쟁을 가속화하고, 미국과 중국의 행동에 대응할 논리도 상실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EU 내에서 벌어진 논란은 사실 우리에겐 익숙하다. 과거 론스타 사건 등을 비춰보면 우리 국민은 해외 사모펀드(PEF), 벌처펀드를 대놓고 악의 세력으로 취급한다. 국내 기업을 적대적으로 M&A하려는 데엔 정부가 선별적으로 개입하기를 바라는 분위기도 강하다. 기업 경영도 땅따먹기 식으로 생각해서다. 한국 기업이 외국 기업을 인수하는 건 ‘영토 확장’, 반대의 경우엔 ‘영토 상실’처럼 여기는 것이다.
진짜 전략적으로, 국가 안보를 위해 M&A에 개입해야 할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해외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막연한 구조조정이나 기술유출 우려를 들어 M&A에 반대하는 건 효율적 자원배분을 막는다. EU 내 움직임이 한국의 민족주의 성향을 더 자극할까 걱정스럽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르펜을 누르고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르펜과 달리 친기업, 친시장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마크롱(사진 오른쪽)에게도 보호주의적 경향이 나타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다음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 공동성명(코뮈니케) 초안을 입수해 15일(현지시간) 보도한 기사를 보면 ‘EU 지도자들이 국가안보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경우 해외 투자를 막을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초안은 마크롱 대통령이 주도하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 왼쪽),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 등이 동조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르펜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이 외국인직접투자(FDI) 검열 구상에 여러 나라가 거부감을 드러냈다. FT는 네덜란드, 북유럽 및 발트해 연안국들이 이에 반대한다고 전했다.
FT는 초안에서 M&A 불허 사유 중 하나로 ‘전략적 이해관계’를 제시한 데 대해 사설로 강하게 비판했다. 2006년 프랑스 정부가 식품회사 다논에 대한 M&A 시도를 ‘전략적 이해관계’를 이유로 막은 사례도 소개했다. 식품회사가 전략적으로 중요할 수 있다면 그 어떤 회사가 중요하지 않겠냐는 지적이다. 그렇게 기준이 모호해선 각국 내 정치적 압력으로 인한 오용을 막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런 구상을 내놓은 배경은 일면 이해가 된다. ‘더 강한 유럽’이 되자고 메르켈과 의기투합한 그는 미국의 보호주의적 행보와 점증하는 중국의 유럽 기업 M&A에 EU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국은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를 통해 외국 자본의 M&A를 감독하고 필요하면 인수를 제한한다. EU는 지금까지 이 문제를 각국 정부의 판단에 맡겨왔다. 마침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정부가 CFIUS 기능을 강화해 외국 투자를 더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미국은 독립위원회 형태로 M&A를 감독하고 있다”며 “EU 차원에서 안보를 위해 뭔가 하려면 이런 독립적 형태를 띠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U가 이런 보호주의적 조치를 강행하면 세계의 보호무역 경쟁을 가속화하고, 미국과 중국의 행동에 대응할 논리도 상실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EU 내에서 벌어진 논란은 사실 우리에겐 익숙하다. 과거 론스타 사건 등을 비춰보면 우리 국민은 해외 사모펀드(PEF), 벌처펀드를 대놓고 악의 세력으로 취급한다. 국내 기업을 적대적으로 M&A하려는 데엔 정부가 선별적으로 개입하기를 바라는 분위기도 강하다. 기업 경영도 땅따먹기 식으로 생각해서다. 한국 기업이 외국 기업을 인수하는 건 ‘영토 확장’, 반대의 경우엔 ‘영토 상실’처럼 여기는 것이다.
진짜 전략적으로, 국가 안보를 위해 M&A에 개입해야 할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해외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막연한 구조조정이나 기술유출 우려를 들어 M&A에 반대하는 건 효율적 자원배분을 막는다. EU 내 움직임이 한국의 민족주의 성향을 더 자극할까 걱정스럽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