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얼음 한 조각의 추억
비라도 한번 뿌리면 좋으련만 날은 여전히 가물고 무더워지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가 보다. 아무리 찬물을 먹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얼음물을 찾게 된다. 커피도 따뜻한 것보다 냉커피를 더 찾는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만큼 찬 음료를 즐겨 마신다.

여름이 되면 아내는 중·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수박을 사오던 날의 얘기를 종종 한다. 어쩌다 한번 사오는 수박을 자기 집만 먹을 수가 없어 몇 쪽 갈라 이웃에 돌리고, 그렇게 해서 남은 걸로 할머니부터 온 식구가 다 먹자니 물을 부어 양을 늘려 화채를 해먹을 수밖에 없는데, 그때 자기가 매일 얼음집으로 심부름을 다녔다고 했다. “얼음이 차가우니 그냥 들고 갈 수가 없잖아요. 지금처럼 비닐봉지나 그물망이 있는 것도 아니니 새끼로 얼음을 칭칭 동여매주는 거예요. 그러면 그 끈을 잡고 집에 오는 거죠.”

그러나 그것만 해도 시내에 살고 읍내에 살던 사람들의 얘기지, 나처럼 강원도 대관령 아래 산골에 살던 사람들에겐 우물이 냉장고 역할을 대신했다. 어쩌다 수박 한 덩어리가 생길 때에도 큰 물통에 가득 우물물을 채운 다음 거기에 수박을 담가뒀다. 때로는 우물물에 바로 수박을 띄워놓기도 했다. 두꺼운 수박 표면을 생각한다면 실제 냉장효과는 별로였겠지만 마음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수박을 먹었던 것이다.

그러다 강릉 시내 중학교에 들어가 여름방학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누군가 시내에 있는 제빙공장 얘기를 했다. 공장에서 얼음을 얼려 꺼내는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에 맞춰 가면 작은 얼음 한 덩어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신기하고도 귀한 정보였다. 학교가 끝난 다음 친구들과 우르르 제빙공장으로 달려갔다. 가서도 한 시간쯤 기다려 새하얀 얼음이 나오는 걸 봤다.

그중 주먹만 한 것 한 덩어리를 매우 진귀한 보석처럼 얻었다. 마음은 그것을 그대로 집에 가져가 할아버지한테도, 또 동생들한테도 자랑하고 싶은데 집이 멀어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이걸 시내에서 시오리 떨어진 집까지 가져갈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제빙공장 아저씨는 거기까지 가져가려면 이렇게 작은 덩어리 말고 두부 열 모만 한 걸, 그것도 그냥 가져가면 안 되고 햇볕이 안 닿게 가마니 같은 걸로 둘둘 말아 가져가야 할 거라고 했다. 그래도 대관령 아래까지 가면 두부 한 모 크기밖에 남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 우리집까지 가져갈 방법이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자 제빙공장 사람 누군가 냉장고 얘기를 했다. 시내에 아이스케키 장수들이 들고 다니는 아이스케키 통보다 더 시원한 것이니 거기에 넣어 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어떤 물건이냐고 묻자 다시 냉장고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여기 강릉 시내에도 그거 있는 집이 열 집도 안 될 것이다. 물로 얼음도 얼리고, 또 얼음을 넣어두면 그 얼음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거든.”

내가 내 소유의 물건으로 처음 냉장고를 갖게 된 것은 그러고도 14년이 지난 다음 스물일곱 살에 결혼하고서였다. 비록 단칸방이었지만 냉장고가 우리 신혼방에 들어왔을 때 내가 처음 해본 것은 냉장실에 이런저런 음식을 넣는 것이 아니라 위쪽 냉동고에 물 한 그릇 떠 넣어서 얼려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13세 때 처음 한여름에 얼음을 얻으러 친구들과 제빙공장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갔던 그날의 추억을 떠올렸다. 돌아보면 얼음 한 조각 사이로도 이렇게 세월은 가고 시간은 흐른다.

이순원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