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야 3당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문 대통령이 국회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장관 후보자를 임명한 것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 이어 두 번째다. 하지만 야권 분위기는 김 위원장 때와는 사뭇 다르다. 자유한국당은 향후 청문회는 물론 추경, 정부조직법 처리 등 국회 일정 거부 방침을 밝혔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국회 일정과는 분리 대응한다는 방침이지만 “협치를 훼손하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야당의 거센 반발에도 임명을 강행한 것은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에 이어 강 장관까지 낙마할 경우 국정 장악력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한·미 정상회담을 열흘 남겨두고 외교부 장관 공석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다. 강 장관 임명이 불가피했느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

문제는 최근 인사 파행과 관련한 청와대와 여당의 인식이다. 문 대통령은 어제 강 장관을 임명하면서 “국회에 좀 유감이다. 인사(와 관련) 생각이 다르다고 선전포고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말했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국민 60%가 외교장관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며 “더 이상 장관 임명을 정쟁 도구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인사 문제에 대해 사과는 없이 야당만을 탓한 것이다.

인사 문제는 강 장관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등도 모두 이런저런 흠결로 사퇴 압력에 직면해 있다. 청와대는 ‘국민의 뜻’ 운운하며 여론을 등에 업고 야당 반대는 무시하겠다는 듯하다. 그러나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를 구성하는 야당을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초반의 높은 지지율만 믿고 협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우(愚)를 범해서는 곤란하다. 문 대통령이 직접 부적절한 후보 지명에 대해 사과부터 하는 게 순서다. 그게 ‘소통’으로 가는 길이며 그를 뽑아준 국민에 대한 도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