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하청사 사장들 "수십억 빚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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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업체에 비용 떠안긴 불공정거래로 결국 폐업"
공사 먼저하고 단가 책정…일방적으로 대금 깎아
기존 협력사 부도 직전 업체 교체해 '돌려막기'
공정위 제소·법적 투쟁
공사 먼저하고 단가 책정…일방적으로 대금 깎아
기존 협력사 부도 직전 업체 교체해 '돌려막기'
공정위 제소·법적 투쟁

20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제윤경 의원실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경남 거제시에서 폐업한 대우조선 사내 협력사는 119개에 달한다. 같은 기간 삼성중공업 사내협력사 중 폐업한 곳은 9개에 불과했다. 대우조선 사내 협력사는 대우조선의 해양플랜트사업이 부실해지면서 함께 위기를 맞았다. 이 과정에서 대우조선이 하도급업체에 비용 부담을 떠넘기는 등 불공정거래를 한 탓에 큰 손실을 안고 폐업하게 됐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이 떠안은 피해 추정금액은 약 1880억원에 달한다. 최근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은 대우조선에 2000억원의 자금 지원을 재개하면서 회사 살리기에 나섰다. 하지만 빚더미에 앉은 이들은 대우조선의 불공정거래를 입증하느라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원을 오가며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이상현 전 한성기업 대표는 지난달 18일 공정위에 대우조선을 상대로 불공정하도급거래행위 신고서를 제출했다. 그가 주장하는 위반 행위는 비정상적인 견적·계약·정산 절차 등 크게 네 가지다. 공사를 먼저 한 뒤 나중에 계약서를 쓰거나, 공사 과정에서 설계변경으로 인해 발생한 비용도 협력사에 전가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협력사들은 비정상적인 계약 절차를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정식 계약서 없이 일단 공사를 하고 1개월 뒤 견적서, 정산합의서, 하도급 계약서 등을 일괄 처리했다. 협력사들은 인력 투입 단가도 모른 채 공사부터 하니 손익을 계산할 수도 없었다. 선박 배관을 담당하던 성하기업도 불공정 계약으로 손실만 보다가 지난해 2월 말 폐업했다. 조영식 전 대표는 “발밑이 없는 늪에 빠졌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회사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부도 업체는 ‘돌려막기’
부도 직전의 협력사를 다른 업체로 교체하는 ‘업체 돌려막기’도 피해 협력사들이 꼽는 대표적인 불공정거래다. 기존 협력사가 한계 상황에 다다르면 기존 채무 중 50~70%만 변제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종료하고 다른 업체와 새로운 하도급 계약을 맺는다. 이 과정에서 새 협력사는 기존 협력사의 인력과 비용까지 승계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화랑산업도 그런 업체 중 하나였다. 백이석 전 화랑산업 대표는 “참여하던 공정에 원래 네 개 협력사가 있었는데 (원청 측에서) 두 개로 줄여야 되는 상황이니 다른 업체 인력을 양수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했다”며 “거절하면 불이익을 당할까 봐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우리 업체와 다른 업체 두 군데를 합친 뒤 한꺼번에 정리 당했다”고 덧붙였다.
이들 협력사는 대우조선과 법적 분쟁도 불사할 방침이다. 이상현 전 대표는 “대우조선이 세계 최고 조선사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협력사들의 헌신적인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대우조선은 살리면서 불공정거래로 무너진 협력사를 방치하는 사회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이민하 기자 mina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