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정(公正)
외국인과 대화하면서 ‘갑을관계’를 설명해야 할 때면 곤혹스럽다. 갑은 ‘upper hand’로, 을은 ‘lower hand’ 정도로 대충 번역하지만 갑을관계에 내재된 깊은 의미를 전달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갑질한다’는 더더욱 어렵다. ‘bossing around’ 정도로 의역하지만 차진 느낌은 없다.

경제학 맥락에서 해석해 보면 갑질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한 갑이 이를 활용해 을로부터 부를 이전하는 경제적 행위를 통칭한다고 볼 수 있다. 완전경쟁 아래에서 모든 참여자는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을 수용하는 가격 수용자가 된다. 즉 가격은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이 결정하고 수요자나 공급자나 모두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불완전경쟁 아래에서는 누군가가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를 가격 결정자라고 한다. 독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상품 공급자가 한 명이고 수요자가 다수인 상황에서 생산자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격을 올린다. 이 경우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가격을 올림에 따라 소비자의 잉여가 생산자에게 이전된다.

둘째, 가격을 올리면 생산량이 줄어들어 소비자와 생산자 잉여의 총합, 즉 사회적 잉여가 줄어드는 자중손실(deadweight loss)이 발생한다. 쉽게 말해 파이 자체가 줄어들고 줄어든 파이의 대부분을 생산자가 가져가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중의 고통을 안게 된다. 경쟁 양태에 따라 다르지만 과점 역시 비슷하다. 만약 담합이 가능할 경우 소비자의 이익을 공동으로 편취해 독점과 동일한 수준의 가격 왜곡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각 국가는 독과점 규제를 통해 사회적 편익을 증가시키고 생산자의 과도한 이익 편취도 제어한다.

독과점은 많은 산업에서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특수한 예로 프랜차이즈산업이나 대리점 체계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율은 27%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패자부활전’이 활성화돼 있지 않다 보니 퇴직 후 재취업이 거의 불가능해 많은 퇴직자가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나 유통업체 점주로 전락한다. 가맹점주나 유통점주는 프랜차이즈업체나 유통업체가 제공하는 물품만을 공급받아 독점적 관계가 형성된다.

종속적 관계로 인한 문제는 단순히 가격 왜곡뿐만이 아니다. 몇 년 전 유제품 대리점 사건에서 보듯 인기 없는 상품을 강매하거나 투자 및 판매관리비를 전가하는 문제와 같이 종속적 관계를 악용한 불공정거래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독점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수요자 독점’이란 현상이 있다. 수요자가 한 명이고 다수의 생산자가 존재할 때 발생하며, 구매자가 가격 결정자가 된다. 이 경우 완전경쟁시장에 비해 구매자는 가격을 낮추고 구매량도 줄인다. 독점과 마찬가지로 자중손실이 발생해 파이는 줄어들고 생산자의 잉여가 구매자에게 이전된다.

우리 경제에서 수요자 독점은 핵심적인 문제다. 대기업이 수요 독점적 위치를 이용해 하청기업의 단가를 후려치는 문제 외에 대금 지급을 이연시키거나 어음으로 지급하는 등 역시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추가적 불공정 문제가 야기된다.

동반성장이나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독점과 수요자 독점의 폐해를 줄이는 것이다. 문제는 독점과 수요자 독점에서 발생하는 불공정거래는 당연히 근절해야 하지만 가격 왜곡에 얼마만큼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완전경쟁 아래에서의 가격과 불완전경쟁 아래에서의 가격 어딘가에서 결정돼야 하는데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김상조 교수가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으로 부임했다. ‘재벌저격수’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이 있지만 필자가 본 학자 중 공정거래 분야에서는 전문성과 합리성뿐 아니라 현실 감각 측면에서 가장 뛰어난 학자 중 한 명이다. 그가 진행할 개혁을 기대해 본다.

안동현 < 자본시장연구원장 ahnd@kcmi.re.kr >